미추홀구 문화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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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역사 속의 변천사

‘물의 고을, 미추홀(彌鄒忽)’ 2,000여 년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여 새롭게 거듭난 ‘미추홀구’
  • 고대

미추홀구의 문학산 일대에서는 다양한 선사유적 및 유물, 12기 남짓의 고인돌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독립된 생활영역을 가진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에 따르면 기원전 18년 비류(沸流) 집단이 남하하여 미추홀(彌鄒忽)에 나라를 세웠다고 나타나는데, 이 미추홀이 바로 인천으로 비정(比定)되고 그 중심에 문학산 일대가 자리한다. 이 지역은 고구려 매소홀현(買召忽縣)으로 불리다가, 신라의 영토가 된 후 757년(경덕왕 16)에 소성현(邵城縣)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현재 문학산에는 삼국시대 말기 신라가 쌓은 것으로 알려진 문학산성이 남아 있고, 문학산 제사유적을 비롯한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1927년 학익동 고인돌 조사 사진(국립중앙박물관)

1927년 학익동 고인돌 조사 사진(국립중앙박물관)

현재 문학산성 북면 잔존 성벽

현재 문학산성 북면 잔존 성벽

  • 고려시대

소성현은 지역 호족세력 인주(仁州) 이씨(李氏) 집안이 고려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며 경원군(慶源郡), 인주(仁州), 경원부(慶源府)로 개칭 및 승격되었다.
7대에 걸쳐 80년 동안 왕실의 외척 세력으로 성장하여 이른바 칠대어향(七代御鄕)으로 불리었고, 현재 문학산 남쪽에 이허겸의 묘와 원인재(源仁齋)가 남아 있다.
또한, 학림사(鶴林寺) 터의 명문기와, 문학산의 사찰 터와 돌덧널무덤 등 고려시대 유물이 확인되었다.

학림사터 출토 범자무늬 암막새(인천광역시립박물관)

학림사터 출토 범자무늬 암막새(인천광역시립박물관)

  • 조선시대

조선이 건국되며 경원부는 다시 인주로 강등되었다가 1413년(태종 13) 지방 행정 제도 개편에 따라 인천군(仁川郡)이 되었다.
1459년(세조 5)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 윤씨의 외향(外鄕)이 인천이라 하여 군에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고, 이후 역모사건에 연루된 인물이 인천 출신이라 인천도호부가 인천현(仁川縣)으로 잠시 강등되기도 했다.
인천도호부 관아(官衙)가 미추홀구의 문학산과 승학산 사이에 위치하여 이곳이 지방행정의 중심인 읍치(邑治)가 되었고, 교육시설인 인천향교와 학산서원, 관방시설로 문학산성과 봉수대 등이 주변에 자리했다. 요컨대 읍치의 형성으로 인해 조선시대의 다양한 문화유산이 문학산 일대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화도진도의 인천도호부 관아 확대(국립중앙도서관)

화도진도의 인천도호부 관아 확대(국립중앙도서관)

현재 인천도호부관아(재현물) 및 인천향교

현재 인천도호부관아(재현물) 및 인천향교

  • 근대

1883년 인천항 개항과 함께 개항장에 통상사무를 전담하는 감리서가 들어서며 행정중심이 인천도호부 관아에서 개항장으로 이동하였다.
1903년 8월 개항장 일대가 부내면(府內面)이 되었고, 관아가 있던 이전의 부내면은 구읍면(舊邑面)이 되어 버렸다.
또, 1914년 일제의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개항장 일대의 부내면 지역만 인천부로 남기고, 나머지 지역과 부평을 합쳐 새로이 부천군이 신설되었다.
이때 미추홀구 지역은 부천군 문학면(文鶴面)[구읍면+서면]과 다주면(多朱面)[다소면+주안면]에 속했다가 1936년과 1940년 인천부의 부역이 확장되며 다시 인천부로 돌아갔다. 이와 함께 인천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행정 편의를 위해 부평 · 남동 · 서곶 출장소를 설치했고, 1943년 7월 10일에 이르러 옛 문학면 지역을 관할하는 문학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16년 문학면 지도 확대(국토지리정보원)

1916년 문학면 지도 확대(국토지리정보원)

  • 현대

광복 이후에도 인천부의 출장소 체제는 계속 이어졌고, 종래의 일본식 정명(町名)을 우리 고유 동명(洞名)으로 개정하였다. 1947년 4월 미군정은 인천부 주안지청을 설치해 9개동을 관할케 했는데, 이는 곧 이듬해 8월 남동, 문학, 주안출장소 등 3개 출장소가 공식 출발하는 것으로 이어져 오늘날 미추홀구의 기틀이 되었다.
1956년 11월 남부, 남동, 문학, 주안출장소로 분할되었고, 1968년 1월 1일 구제를 실시하며 하나로 합쳐져 ‘남구(南區)’가 탄생하였다. 남구는 하위에 30개의 관할동을 24개의 행정동으로 묶어 운영하였고, 1개의 남동출장소를 두었다. 당시 남구의 인구는 약 18만 명에 달하여 인천시 4개 구 중에서 제일 많았다. 이후에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거주지를 찾아 모여들었다. 비대해진 남구 지역은 분구(分區)와 분동(分洞)을 거듭하여 1988년 1월 1일 남동구, 1995년 3월 1일 연수구가분구되며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2018년 7월 1일 기존 방위식 지명을 탈피해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미추홀구(彌鄒忽區)로 명칭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학산에서 내려본 미추홀구 전경

인천 행정구역 명칭의 변천과 미추홀구

시기/지역 1789년 1907년 1914년 1940년 1957년 1968년 1988년 1995년 현재
인천 부내면(府內面) 구읍면(舊邑面) 부천군(富川郡)
문학면(文鶴面)
인천부 문학면 남부・문학 출장소 남구(南區) 남구 남구 미추홀구(彌鄒忽區)
다소면(多所面) 다소면 부천군
다주면(多朱面)
인천부 다주면
부내면(府內面) 인천부(仁川府) 인천부 본청 직할 중부출장소 중구(中區) 중구 중구 중구
동부・북부 출장소 동구(東區) 동구 동구 동구
남촌면(南村面) 남촌면 부천군 남동면(南洞面) 인천부 남동면 남동출장소 남구(南區) 남동구(南洞區) 남동구 남동구
조동면(鳥洞面) 조동면
주안면(朱安面) 주안면 부천군 다주면 인천부 다주면 주안출장소
먼우금면[遠又厼面] 서면(西面) 부천군 문학면 인천부 문학면 문학출장소 남구(南區) 남구 연수구(延壽區) 연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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