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미추홀구에는 여전히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동네가 곳곳에 있다. 냉랭한 직선의 큰길을 벗어나 안으로 들어가면 푸근한 곡선의 골목길이 이어진다. 몇 번은 쉬었다 올라가야 닿는 가파른 고갯길이지만 그곳까지 따듯한 햇살이 쫓아 올라온다. 사람 냄새를 뒤따라가 미추홀구의 이 마을 저 동네를 찾아가 본다.

 

자동차를 타고 제2경인고속도로 달리다 보면 오른편에 문학산 정상과 노적봉이 길게 이어진다. 방음벽 너머로 집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산기슭 따라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 차창을 스치듯 지나간다.

고속도로가 공중을 가로지르기 전에는 법원이 있는 아래 동네와 함께 한눈에 들어왔을텐데 지금은 육중한 교각들이 두 마을을 갈라놓았다. 마을버스 518번의 종점이 언덕 위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다.

여기는 미추홀구 학익동 197-1번지 일대로 일명 양토마을이다. 예전에 토끼를 길렀다해서 얻은 이름이다. 7, 80년대 이곳에는 양돈이나 양계가 아닌 대량으로 토끼를 사육하는 양토장(養兎場)이 있었다.

어느 주민이 용현동 철길 밑에서 토끼를 키우다가 이곳으로 옮겨와서 비닐하우스를 짓고 토끼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토끼는 셀 수 없을 만큼 번식해 양토장으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가 즐비했다. 지금의 학익체육관 자리가 토끼농장 입구였다.

당시만 해도 토끼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가축이다. 웬만한 초등학교에는 교육용 혹은 관상용 토끼를 기르는 토끼장이 있었고 먹이 주는 당번도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 토끼는 배고팠던 시절, 소중한 먹을거리였다. 고단백 저염식품으로 중요한 보양식이었다. 시내 곳곳에는 인천시가 지정한 토끼 영양센터간판을 단 음식점들이 있었다.

양토마을에서 키운 토끼는 주로 털을 밀어서 토끼털 옷 만드는 곳에 납품되었다. 토끼 농장주인은 TV 프로그램에 두 번이나 출연할 만큼 유명세를 탔다. 농장주인이 세상을 뜨자 번창하던 양토장도 점차 사라졌다.

지금은 토끼 한 마리 볼 수 없는 동네가 되었다. 얼마 전 고속도로 교각 밑에 토끼 두 마리의 조형물이 생겨 옛 마을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이제 마을 입구에는 토끼 양토장 대신 흑염소탕과 영양탕 간판을 단 크고 작은 음식점들이 들어 서 있다.

고갯길 따라 마을로 올라가 본다. 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초가를 걷어내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오래된 집이 산길 입구에 마치 검문소처럼 서 있다.

발걸음을 옮기자 나무 울타리 친 집, 작은 정원이 딸린 집, 담장 낮은 집 등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한가한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비탈진 꼬불꼬불한 골목길 앞 공터에 연탄이 수북이 쌓여 있다. 아마 내일이면 이 동네에 연탄배달 봉사를 하기 위해 서툰 지게질을 할 학생들로 잠시 소란할 것이다. 덕분에 집집마다 하얀 연기가 따듯하게 피어날 것이다.

문학산에서 불어온 찬바람은 산동네를 휘돌아 내려가 고속도로 너머 아파트 동네로 향한다. 산 동네 끝, 꼭대기 계단에서 아래쪽 고층 아파트 동네를 내려다본다. 같은 하늘을 이고 같은 시간을 보냈건만 어느덧 위아래 동네는 다른 공간이 되었다. 토끼 동네 양토마을은 시간과의 경주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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