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현동의 한 초등학교 앞, 이곳에 아주 특별한 공간이 생겼다. 무심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낡고 허름한 건물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른한 고양이 관장 ‘이피’가 반겨주는 ‘허름한 미술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곳은 이정애 동화작가가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딸 박소영 화가를 위해 마련한 전시공간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투박하고 소박해 더 정겹게 느껴지는 허름한 미술관은 지난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개관했다. 미술관 개관기념전으로 기획한 ‘멕시코 검은 소’는 박소영 화가의 대표작이자 첫 개인전의 이름이다.
“처음부터 미술을 전문적으로 시킬 생각은 없었어요. 세상을 살아가려면 글이라도 깨우쳐야겠다는 생각에 학교에 보냈는데 그림과 관련된 상을 많이 받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소영이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정애 작가는 미술에 소질을 보이는 딸의 그림을 유심히 보다가 유독 밝은색으로 표현한다는 걸 알게 됐고 작품에서 힐링을 느꼈다고 한다.
취미로 그리던 그림은 학교를 졸업한 후에 더욱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2020년 10월 열린 ‘제33회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에서 우수상을 받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싱가포르 아티스트 글로리아 케(Gloria Keh) 작가와 함께 콜라보 작업을 하기도 했다. 소영 씨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은 글로리아 케 작가가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내온 것이다.
“아이큐가 30인 아이도 그 나름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있구나, 저는 이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림에 녹아든 소영이의 해피 바이러스를요. 소영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행복이 느껴져요. 이러한 행복과 웃음을 전하고 싶었죠. 허름한 미술관은 그런 과정 속에 정말 운명처럼 탄생한 공간이에요. 원래 이 공간은 창고로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지인에게 이런 공간이 있다고 이야기하니 소영이의 그림으로 전시회를 해보라는 거예요. 그러고는 ‘멕시코 검은 소’ 개관기념전 포스터를 만들어 보내오더라고요. 그간 소영이가 그린 작품들이 꽤 많아 정리하려던 참에 우연한 계기처럼 다가왔죠.”
국문학을 오래 공부하며 평론가를 꿈꿨던 이정애 작가가 동화작가로 데뷔하게 된 것도 소영 씨를 키우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던 소영 씨의 이야기를 담은 처녀작 <뜨거운 이별>로 그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동화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등단한 이후에는 여러 단편을 담은 <똥물에 튀겨질 뻔한 우리 아빠>와 소영 씨에 대한 애정을 담은 <내 인생에 태클을 건 당신>을 썼다. 다음 작품으로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등 다양한 장애를 앓고 있는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옴니버스식의 동화 단편집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소영이 작품을 정리하기 위해 마련했지만, 잠재적인 소통의 공간이 됐다고 생각해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거리낌 없이 소통하고 더 나아가 멘토와 멘티가 돼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끌어 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면 좋겠어요. 장애인의 ‘장’자를 ‘막힐 장(障)’이 아니라 ‘길 장(長)’으로 바꾸면 ‘장애인은 길게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라는 뜻이 돼요. 허름한 미술관이 마음을 나누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미술관이 꼭 럭셔리할 필요가 있던가. 허름한 미술관은 장애인뿐 아니라 나이, 성별,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전시를 열고 싶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공간이다. 소영 씨를 키우며 살아온 시간을 “결국은 사랑이었다”라는 이정애 작가의 말처럼 허름한 미술관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허물어지고 누구나 소통하는 기회가 닿기를 바란다.
허름한 미술관
미추홀구 인주대로238번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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