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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학도들은 겨레의 힘이요, 나라의 기둥이다. 특히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 화랑의 후예들은 이 정권의 부패와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학생혁명을 일으켰고 4.19날 인천에서 의거의 횃불을 먼저 높이 밝힌 이가 우리 공고 학생들이라. 이들의... (중략) 감사하는 바이다.”

1960315일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후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 같은 또래인 학생들이 분개하며 민주적인 절차로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학생이 중심이 된 4.19혁명이 국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419일 화요일, 그날은 피의 화요일이라 불린다. 인천에서는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먼저 횃불을 들었다. 학생 300여명이 이승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수업을 거부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일부 학생들은 교사들의 만류를 피해 수봉산을 넘어 시내로 모여들었고, 남인천여자중학교와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인천여자고등학교 등 여학생들도 대거 동참했다. 시위는 426일 특별담화를 통해 하야를 발표하기 전까지 격렬하게 진행됐으나, 학생들은 현수막을 들고 시가행진하며 만세삼창을 부르거나 구호를 외칠 뿐 평화적이었다. 폭력 없는 평화적인 시위에도 총부리를 겨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4.19혁명 1년 뒤인 1961년 도원동 운동장에서 수천 명의 학생과 유가족이 모여 혁명 1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개최했다. 같은 해 612, 학생들의 의거를 기리기 위해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교정에 인천공업고등학교와 경인중학교 학우 회장 명의로 ‘4.19학생의거기념탑과 비문이 세워졌다. 이는 인천에 유일하게 세워진 4.19 학생 민중항쟁 기념비로, 경동사거리와 인천 중구청 앞, 강화중학교 등에 ‘4.19혁명 기념비가 건립된 건 시간이 한참이 흐른 202012월이었다. 4.19혁명은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한 시민혁명이다.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언제나 그 선두에 나서는 것은 학생들이었다. 이 땅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선 학생들의 숭고한 희생을 가슴 깊이 되새겨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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