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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산은 해발 100m를 살짝 넘는 나지막한 산이다. 사방으로 뻗은 산자락을 숭의동, 용현동, 도화동, 주안동이 함께 품고 있다. 숭의동의 수봉영산마을은 얼추 수봉산의 북서쪽 기슭을 차지하고 있는 산동네다.

6·25전쟁 후 피난민들에게 평지는 언감생심. 땅뙈기가 듬성듬성 남아 있던 산비탈에 솥단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이후 주안 쪽에 공단들이 들어서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이곳으로 올라와 정착했다.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마치 빗질하듯 여러 갈래의 골목이 생겼다.

지금은 마을 앞에 수봉로라는 넓은 오르막길이 뚫려 있다. 이 길 덕분에 제물포역 근처 아랫동네에서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길이 없을 때는 끄트머리 산동네였다. 자동차로 올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 옛 주인선 철길 앞까지였다. 여기서부터 걸어가야 닿을 수 있었다.

수봉영산마을은 한때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사업 추진이 여의치 않아 2012년 해제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가 2020년 여름, 지역 예술가들이 이곳에 나타났다. 그들은 마을 탐색단을 꾸려 주민들과 함께 수봉산 둘레 마실길을 만들었다.

1976년 창건한 사찰 영산정사앞 언덕길 수봉로 85번길을 중심축 삼아 낡은 계단들을 정비했다. 더불어 주민들이 직접 타일 벽화를 만들었으며 꽃을 심어 예쁜 꽃길을 조성했다. 특히 기다란 내리막길을 이용해 아찔한 트릭아트를 그려 넣어 한동안 인증샷을 찍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수봉산 둘레 마실길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덧 전망대에 다다르게 된다. 전망대가 있기 전에도 이 동네 끝까지 오르면 아랫동네를 굽어볼 수 있는 뷰 포인트였다. 특히 주인선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아이들은 미지의 세계를 꿈꾸곤 했다. 마실길 중간에는 노천 갤러리도 자리잡고 있다. 필자가 이 동네를 찾았을 때는 인천 출신 동양화가 이관수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영산마을 초입에는 지누골 정자 쉼터가 있다. 지누골은 예전에 진흙탕골로 불렸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 맞은 편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수봉별마루도너츠카페가 자리잡고 있다. 카페 건너편에는 오래전 양옥집을 개조해 연 슈퍼마켓이 있다. 이 삼각 꼭짓점이 이 마을의 이정표 겸 위병소 역할을 한다. 여기를 기준으로 동네 안팎이 구분되었다.

한동안 어른들은 출퇴근하며, 아이들은 등하교하며 이곳을 꼭 거쳐 갔다. 동네의 대소사, 이웃의 뒷담화, 정보 교환 등 갖가지 이야기가 여기서 생산되고 소비되고 전파되었다. 알록달록했던 벽화들이 색이 바랠 만큼 시간이 또 흘렀다. 이제는 대소사를 함께 나눌 이웃도 하나둘 떠나고 뒷담화도 예전 같지 않다. 그렇게 수봉영산마을은 또 한해의 봄을 조용히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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