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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한때 미추홀구 용현2동 용마루 언덕 아래로 몇 갈래의 기찻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주인선, 협궤수인선, 동양화학선 등이 남부역이라 불린 곳에서 얽히고설켰다. 역이라지만 역사(驛舍)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화물열차와 군용열차가 교차하고 정차했던 공터다.

기찻길 양옆으로 마을이 길게 이어졌다.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에 새벽잠을 깨고 달리는 기차의 거센 바람에 슬레이트 지붕이 들썩거릴 절도로 가난했지만 따뜻한 하루가 길게 이어졌던 동네였다. 오두막 아이들은 하루 종일 기찻길에서 놀았다. 굽은 기찻길로 천천히 달리던 기차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눈을 깜빡이지 않고 작아지는 꼬리를 바라보던 그 아이들의 그 시간들.

누군가는 철길을 따라 도시로 떠났고,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키며 세월을 건넜다. 언젠가부터 기차는 오지 않았다. 기찻길은 녹슬었고 오막살이는 하나둘 무너졌다. 기찻길은 바람 숲길이 되었고 오막살이 대신 높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세월이 밀고 들어온 자리엔 추억이 조용히 눌러앉았다.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찻길 한편에는 여전히 마을이 남아 있다. ‘능해길 77번길이라는 새주소를 얻었다. 집집마다 별별색색 벽화로 치장한 채 등 굽은 노인처럼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철길은 사라졌지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과 바람과 햇살은 지금도 숲길과 골목길 어딘가에 남아 말없이 이방인을 반긴다.

기찻길 사진은 20173월에 찍은 것이다. 그때는 기차가 봄을 싣고 왔다. 강아지풀, 도깨비풀, 민들레, 채송화. 봄마다 기찻길 마을 사람들만의 시크릿가든이 꾸며졌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철길에서 쑥, 냉이 등 봄나물을 캐곤 했다. 기차는 오지 않아도 매년 봄은 군데군데 남아 있는 기찻길 따라 계속 올 것이다.

남부역에는 이별의 눈물이 흥건히 배어 있다. 지금은 개별적으로 가지만 1985년까지는 단체로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인천공설운동장에 모여 인원 점검이 끝나면 완장 찬 호송관 인솔 하에 숭의로터리를 거쳐 행진해서 도착한 곳이 바로 남부역이었다. 그곳에 논산행 입영열차가 정차해 있고 객차 입구마다 헌병들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뻗치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부모, 친구, 애인과 헤어져야 할 시간. 환송하는 사람들이나 떠나는 장정들이나 눈물 콧물로 뒤범벅된다.

승차!” 호송 헌병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장정들은 열차에 오른다. 털컹. 입영열차는 몸부림을 한번 크게 친 후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열차는 지금은 사라진 주인선을 달리며 가족들과 이별한다. 잠시 후 제물포역 부근에서 경인선 철길과 합류한 열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해 논산으로 내처 달렸다. 3년간의 군 복무 첫날이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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