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비열한 거리(A Dirty Carnival)


너무 강한 세련미… 계산된 솔직함
관객과 거리두기 역할실험과 거리


영화는 ‘사실'이 아니다. ‘허구'다. 좀더 분명히 말하면 관객에게 돈을 받고 사실인 양 사기 치는 허구이다. 여기서 사기란 관객과 감독이 서로 암묵적으로 약속한 감정적 사기를 말한다. 즉, 진짜처럼 소위 ‘리얼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은 등장인물과 동화되고 감동 먹고 눈시울을 적신다. 이런 암묵적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감정적 사기를 잘 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영화감독이라 부르며 그 중 으뜸인 사기꾼을 ‘거장'이라 부른다.
그런데 영화 중에는 “이건 사기야. 이건 영화야" 이렇게 계속해서 이야기하며 사기를 치는 영화들이 있다. 세계영화사적으로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들이 있으며, 국내 대표작으로는 김용태 감독의 [미지왕-미친놈, 지가 왕인 줄 알어!]가 있다.
[미지왕]이 투박하고 촌스럽게 ‘이건 영화' 임을 밝혔다면,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는 강하고 세련되게 ‘이건 영화' 임을 밝히고 있다. 아예 영화감독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와 영화 찍으면서 “이건 영화야!" 하고 소리치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마지막에 황 회장(천호진 役)이 “이야기는 이야기로 끝나야지" 하고 읊조리는 대목은 정말이지 좀 심하다 싶었다.
영화 [비열한 거리]는 솔직하다. 전작 [결혼은 미친 짓이다]나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여주었듯 유하 감독의 계산된 솔직함은 묘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비열한 거리]에서의 솔직함은 너무 계산된 느낌이다. 감정적 사기는 서투른 맛이 있어야 한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큐브], [메멘토]처럼 완벽하게 사기 치는 영화들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덜 감동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열한 거리]의 계산은 바로 고다르식 ‘관객과의 거리두기'에 있다. 하지만 영화의 매체로서의 역할 실험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던 고다르의 거리두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비열한 거리]의 목적의식은 실험영화의 그것이 아닌, 상업주의 영화의 그것, 바로 ‘흥행'과 감독으로서의 ‘인정'이기 때문이다.
조인성의 연기는 훌륭하다. 캐릭터의 일관성·개연성 없음이 그나마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건 정말이지 “웨이터 출신의 조폭" 병두 역의 조인성과 종수 역의 진구 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진구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의 의리파 조직 동생 역에 이어 또 한번 선 굵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영화다운 게 좋다. 돈을 주고 어두컴컴한 극장을 찾을 때는 사기 한 번 제대로 맞아 보려는 기대감으로 가는 것이지 “이건 사기야!"라는 감독의 외침을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끝나야하는 것" 은 감독만 아는 비밀이 결코 아니다.

|김정욱ㆍCAMF 영화영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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