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실직 한 뒤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여자가 겁도 없게 어떻게 대리운전을 하느냐고 다들 되묻곤 하죠. 하지만 젊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운전을 시작한겁니다.
지금 IMF보다 더 불경기라며 난리죠? 그래서 대기업에서부터 조그만 구멍가게까지,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도 양주 한병에 수십만, 수백만원씩 오가는 최고급 유흥업소에서 새나오는 불빛은 수그러들 줄 모릅니다. 고급 요정 앞이나 룸싸롱 같은데는 벤츠, BMW, 아우디 같은 외제차가 이중 주차로 늘어서 있습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니까 뭐 하나라도 더 따낼려고 로비하려는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거라고 하더군요. 참 요지경속입니다.
우리 운전기사들이 일을 하다 보면 벼라별 사람들을 다 봅니다. 타자마자 반말하는 사람은 예사고, 술 취해서 뒤통수 툭툭 쳐가면서 욕하는 사람, 주먹 휘두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차에 오르자마자 “어? 여자네.(혹은 아줌마네)”라며 일단 한번 놀래줍니다.
한번은 모임에서 돌아오는 부부를 태운 적이 있는데 차 안에서 부부싸움을 하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려고 했습니다. 보다 못해 말리니까 이번엔 나도 때리더군요. 대리운전 회사를 대표해서 운전하는 거니까 그냥 맞아주는게 옳은데 거기다가 “네까짓게 뭔데 남의 부부일에 끼여들어? 끼여들긴! 대리운전 주제에…”라며 욕설을 퍼붓더군요.
눈물이 핑 돌았지만 힘도 없는 내가 싸울수도 없고… 집에 다 도착하자 그 남자의 부인이 미안하다며 돈을 2만원 더주더군요. 고맙다며 받기는 했지만 그날은 기분이 정말 죽고 싶을 만큼 안 좋았죠.
한번은 손님을 태우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빈 공간이 없어 “어떻게 할까요” 물었더니 그냥 계속 돌아보라고 해서 지하 주차장을 열 번 넘게 빙빙 돌았죠. 그러다 밖으로 나오니까 이 사람 하는 말이 “성격테스트를 했다”고 말하더군요. 기가막혔죠. 그는 나더러 테스트에 통과했다며 팁으로 3만원을 주더군요. 먹고 살기 위해 꾹 참고 받았는데 솔직히 그때는 ‘내가 왜 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일 밤 추우나 더우나 잠도 못자 가면서 고생하는게 대리운전 기사들입니다. 그렇다고 큰 돈 버는것도 아니죠. 그런만큼 상대방의 인격도 존중해줘야 하는게 사람 사는 도리겠죠. 알고 보면 전부 다 우리 주위에 사는 이웃 아닌가요?
오늘 밤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 주며 웃는 얼굴로 일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사는 우리나라 모든 대리운전 기사님들, 안전운전과 행복 빌어드립니다.
이순애 (숭의1·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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