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김정욱 의 영화읽기

고독하게 묵묵하게
초원의 말아톤처럼

말아톤

달리기만큼 시키는 주체가 누군가에 따라 행하는 객체에게 다가오는 감정이 다른 행위도 없다. 건강이 됐든 다이어트가 됐든 그 목적이 무엇이든지 내가 좋아서 내가 필요해서 달리면 즐겁다. 흐르는 땀도 기분 좋고 다 달리고 넓은 벌판에 드러누웠을 때의 그 상쾌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만약 누가 강제로 시켜서 혹은 군대서나 학교서나 일종의 ‘벌'로 달리기 시작하면 그 괴로움 또한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흐르는 땀은 악취와 끈적임으로 괴롭고, 다 달리고 지쳐 드러누웠을 때는 정말이지 딱 한마디로, “죽고 싶다."
비단 달리기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그렇지 않을까. 본인이 원하는 일인가 아닌가에 따라 동일한 행위라 하더라도 순식간에 고통은 즐거움으로 즐거움은 고통으로 변한다. 결국 인간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고에 의해서 희로애락을 구분하는 정신적 존재에 더 가까운 건지 모른다.
영화 ‘말아톤'은 바로 이 정신적 존재가 부족한 인간, 소위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초원'의 달리기, ‘말아톤' 이야기다. 여기서 잠깐! ‘자폐'는 1999년부터 ‘고쳐야할 질병'이 아닌 ‘극복해야할 장애'로 분류하고 있고 ‘말아톤'은 주인공 초원이가 일기장에 마라톤을 잘못 쓴 것으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선천적 자폐아인 초원이는 유독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즉 정상인과는 다르게 육체적인 행위만을 통해 정신적인 만족감을 느낀다. 영화 전반에는 초원이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가 완주하면 엄마가 주는 자장면과 탕수육 혹은 완주를 못하면 맞게 되는 주사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억지로 마라톤 코치가 된 ‘왕년의' 마라토너 ‘정욱'이 “너 왜 달리냐? 달리는 게 좋으냐?"는 질문에 초원은 이렇게 대답한다. 뭐라고 말했냐고? 초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원은 자신의 가슴에 가만히 코치의 손을 얹는다. 영화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들을 수 있었다. 운동장 100바퀴를 돈 초원의 심장이 힘차게 고동치는 소리를. 우리의 귀가 아닌 우리의 마음속에서.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들 한다. 혼자서 고독하고도 묵묵하게 달려 나가는 게 ‘삶'이란 얘기다. 100미터 달리기의 순간적인 환호나 400미터 계주처럼 역전의 긴박감을 생각하고 섣불리 속도를 내면 안 된다. 누가 뭐라 해도 천천히 제 발길을 떼어 다음 발길로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겨 가야만 한다.
한 숨 한 숨을 고르며 한 발 한 발을 내디디며 조용히 나가가는 삶. 그리고 그 먼 길을 완주했을 때 들려오는 조용한 박수와 타는 목으로 넘어가는 한 모금의 달콤한 물을 위해 지금도 묵묵히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빗속을 질주하며 얼룩말과 함께 초원을 달리는 ‘초원'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시원한 빗줄기를 맞으며 질주하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코치가 초원에게 외친다.
“딴 사람들이 달린다고 따라가면 안돼! 마라톤은 페이스야! 천천히 이 속도를 유지하며 달려! 그러다보면 비가 내릴 거야! 그땐 죽어라고 달리는 거야! 알았지!"
|김정욱|
CAMF영화·영상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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