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우리 이웃에 각종 물건과 쓰레기를 쌓아 놓고 사는 할머니가 있어요. 치매인 것 같은 불 낼 수도 있고 동네 안전이 걱정돼요."
지난해 행정복지센터로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급히 할머니 댁을 방문했더니 할머니의 집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다소곳한 분이었다. 집 치우기를 상의 드리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복지센터 동장, 담당자, 통장 등 스무 명이 대대적으로 청소했다. 강박적 저장증후군으로 오랫동안 모았던 물건에 애착이 있을 텐데 할머니는 묵묵히 비질을 했다. 그런 할머니가 더없이 고마웠다.
할머니는 간단한 일을 깜박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주안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이 후원하는 밑반찬을 연결해 주었다. 또 홀몸어르신 생활 관리사의 도움을 받게 했다. 더불어 치매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일주일에 두 번 치매센터 상담사가 방문, 할머니의 인지향상 훈련을 하도록 조치했다.
어느 날 남구치매센터 상담사와 치매 관련 학습지를 풀 때였다. 기억력 테스트와 간단한 산수 문제를 푸는데, 할머니는 덧셈이 잘 되자 무척 좋아했다.
"할머니, 천재신데요."
"그래? 잘한 거야?"
할머니가 살짝 상기되어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 상담사와 나도 같이 웃었다.
그렇게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연탄을 때며 지내고 식사도 못하실 할머니의 안전과 건강이 걱정됐다.
할머니는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물으면 대답은 했지만 찾고 싶다거나 보고 싶다는 말이 없었다. 연로한 할머니가 추운 겨울을 안전하게 보낼 방법은 시설 입소가 아니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할머니 명의로 된 집을 제외하면 월 소득도 기초연금 20여만원이 전부였다. 큰맘 먹고 할머니께 여쭈었다.
"할머니, 후원물품이 지원 돼도 연탄가스가 걱정돼요. 홀로 지낼 수 없으니, 가족을 찾아볼게요."
"난 혼자 있어도 돼. 염치없이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처음에 할머니는 거부했다. 그러나 긴 설득 끝에 허락을 받아 딸을 찾았다.
"엄마는 오래전에 아버지와 이혼했어요. 7~8년 전부턴 연락이 끊겨서 찾고 있던 중이에요. 우리 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만, 엄마도 저희가 보살필게요. 치매가 있는 분을 그냥 둘 순 없잖아요. 아버지도 그동안 홀로 외로이 살아온 엄마를 이해하실 거예요."
딸과 사위는 주말마다 찾아와서 할머니를 살폈다. 명절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가 함께 보냈다.
"오 복지사, 잘 있었어?"
며칠 전이었다. 머리를 예쁘게 자른 할머니가 행정복지센터로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닌 할머니는 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지내며 차오른 사랑 때문일까? 치매로 흐릿했던 할머니의 눈빛은 또렷했고, 웃음은 더욱 화사했다.
"복지사님, 엄마도 우리 집에서 지낼 거예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할머니를 닮아 따스한 심성을 지닌 딸이 나에게 감사의 웃음을 보냈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할머니 모습도 편안해 보였다.
"정말 잘 됐군요. 할머니, 축하드려요. 예전에 제가 사례관리담당자가 돼 할머니를 뵈러 갔을 때가 생생해요. 그때 우리 팀장님과 친손녀같이 돈독하셔서 저는 무척 걱정했거든요. 새로 바뀐 나를 좋아할지, 거부감은 없을지 몰라서요. 그런데 할머니는 저와의 첫 만남에도 격의 없이 미소를 띠며 반겨 주셨죠?"
"그 마음 씀씀이가 고운데 어떻게 박대하나? 양손에 복지 대상자 홍보물품인 잡곡이랑 파스를 잔뜩 들고 왔잖아. 오 복지사가 아니었으면 난 홀로 그늘 속 꽃처럼 시들어버렸을 거야. 고마워."
할머니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이제 할머니가 서울로 전입신고를 하면, 사례관리 대상자 서비스는 종결이다. 이별이 아쉽고 서운하다. 그러나 할머니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할머니에게 늘 행복과 건강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