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모아 청나라 군대와 맞서
6월1일은 ‘의병의 날’이다.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10년 5월에 제정된 법정기념일로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의 시작과 함께한다.
의병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지리와 조건을 활용한 무기와 전술로 외부침략 맞서 누구보다 용감히 싸운 이들이다. 미추홀구에도 의병과 관련된 문화재가 있다. 용현3동 주택가 안쪽에 있는 ‘이윤생·강씨 정려’가 그곳이다.
용현사거리에서 인하대역으로 가는 길목 ‘용현고개’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정려각을 나타내는 문화재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독배로404번길 34’ 골목을 따라 큰 길가에서 조금 들어가면 주택과 주택 사이로 정려를 모신 정려각이 보인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정려’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고을 입구에 정문을 세워 주던 것을 말한다.
이윤생은 인천에서 대대로 살아온 부평이씨 후손으로 궁술과 마술에 뛰어나 충무위부사과 벼슬을 받았다. 인조 14년인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들을 모아 강화도와 남한산성에 이르는 길목인 원도로 들어가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원도’는 현재의 용현동 낙섬사거리 일대로 흔히 낙섬이라 부르던 작은 섬이었는데 해발 27.4m에 620㎡의 규모의 작약도보다 조금 작은 지역이었다. 원도에서 청나라 군대에 맞서 싸우던 이윤생은 의병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34살의 젊은 나이로 전장에서 죽은 소식을 들은 아내 ‘강씨’는 바다에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윤생과 열녀 강씨의 소식을 접한 철종은 1861년 정려를 내리고, 이윤생을 좌승지, 부인 강씨를 숙부인으로 추증했다. 정려에는 ‘충신 증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이윤생 지 려 철종 신유월일 명정’, ‘열부 증 숙부인 금천강씨 지 려 철종 신유월일 명정’이라는 정려문 편액이 나란히 걸려 있다.
1990년 인천시 기념물 제4호로 등록, 현재까지 이어오는 미추홀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