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인물

2015년 현재 남구의 행정관할에는 도화동, 숭의동, 용현동, 학익동, 주안동, 관교동, 문학동 등 7개 법정동과 21개의 행정동이 있다. 그리고 7개의 법정동은 인천 역사의 출발지였던 남구지역의 특성과 흔적이 지명 등에 고스란히 담겨 유무형의 문화유산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그 가운데 현재 남구 행정의 중심인 남구청이 자리하고 있는 숭의동(崇義洞)은 구한말 인천부 다소면에 속한 지역으로 장의리(長意里)라 불렸던 곳이다. 1920년대 이전까지는 이 일대가 바닷가였고 갯벌이 넓게 퍼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긴 개천이 있어 꾸불꾸불 흐르는 모양이 마치 뱀 같아서 장사래말(마을)이라고도 불렸다.
장사래말은 1903년 비슷한 뜻의 장천리(長川里)로 바뀌었다가 1906년에는 여의리(如意里), 장천리, 독각리(獨脚里)로 나뉘어졌다. 여의리는 여의실 혹은 여우실이라고도 불렀는데, 여는 늘어지다의 어근 어가 음운변화 한 것이고, 실(室)은 골짜기를 의미하므로 길게 이어진 골짜기의 의미로 파악된다. 독각리는 외나무다리란 뜻을 가진 독각에서, 혹은 옹기장수들이 독을 사고 팔 때 주고받던 독값이 독갑으로, 또는 주변에 도깨비산으로 불리는 산이 있어 그 이름을 딴 도깨비다리가 독갑다리로 바뀌었다는 등 해석이 다양하다. 어느 것도 분명치는 않지만 장천리와 마찬가지로 이 부근에 다리가 놓일 정도의 큰 개천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여의리, 장천리, 독각리는 1914년 부천군으로 편입되는데 합쳐지면서 한 글자씩을 따서 장의리(長意里)가 되었다가 1937년 대화정(大和町)이라는 일본식 정명(町名)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광복 후인 1946년에 광복을 경축하면서 옛 신령들을 숭상해 뜻을 이루자는 의미에서 이전의 역사와는 관련 없이 숭의동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그 세월도 벌써 70여년이 흘러 또 하나 역사의 켜가 되었다.
남구청이 위치한 숭의동 터에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의실 혹은 여우실이라 불리던 이곳은 조선 개국공신 계림군(鷄林君) 김균(金균, 1341~1398)이 하사받은 사패지 중 하나로 김균의 3세손인 김종(金宗)이 이거하여 생활하였던 곳이다. 여의실에 정착한 경주김씨 계림군파는 18대가 한 터전을 지켜오면서 16대에 이르러 지역 사회에 기여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초대 인천시 교육위원을 지낸 김경하(金敬夏), 인천 상공 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한 김중하(金重夏), 11대 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은하(金殷夏), 지역 언론인이자 향토 사학자인 김상봉(金相鳳) 등 4형제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더구나 6·25전쟁 당시 전란을 피해 인천으로 옮겨온 개성사범학교를 위해 여의실 일대를 학교 부지로 내놓았는데, 개성사범학교는 인천에 정착하면서 1952년 인천사범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1962년에는 인천교육대학으로 교명을 바꾸었다. 1990년 계산동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는 남구청과 인천광역시 청소년회관이 들어서 있다. 종가와 사당이 없어진(1996) 자리에는 남구청 종합민원실이 들어섰고, 다만, 여우실 경주김씨 종가터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2004).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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