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끈적끈적해야 제맛이 납니다. 감정없이 낭랑하기만 하면 가슴에 닿기가 힘듭니다. 느릿느릿 오묘한 소리가 내 속에서 흘러나올 때 비로소 소리의 참맛을 스스로 느끼게 되지요."
 
무형문화재 제20호 휘몰이잡가 보유자 김국진 선생.
휘몰이잡가는 조선후기 경기지방에서 서민들에 의해 전승돼 온 소리의 하나로, 휘몰아치듯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휘모리잡가로는 만학천봉·병정타령·곰보타령·생매잡아·육칠월·기생타령·비단타령·바위타령·맹꽁이타령·한잔 부어라 등이 있다. 노랫말은 서민들의 생활상과 감정이 담겨있는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긴 사설로 인천지역에서 성행했던 경기민요의 일종이다. 소리꾼들이 긴 잡가를 먼저 부르고 선소리를 부른 다음 맨 마지막으로 휘모리잡가를 불렀다고 한다.
그가 소리꾼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찮다. 18세 때인 어느날 동인천 상가앞을 지나갈 때 장구소리가 들린 곳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그 소리꾼이 바로 이형렬 스승이다. 군대를 다녀온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소리공부를 시작, 이형렬, 이창배, 정득만 선생에게서 경기민요를, 정득만, 박상옥 선생에게서 휘몰이잡가를 사사 받았다.
선소리산타령을 이수한 김 보유자는 사라져가는 지방문화재의 필요성을 느껴 휘몰이잡가로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 한동안 서울 예술회관 같은 대공연장과 방송 무대에 섰던 그는 어느 순간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만나기 시작, 그들과 함께하는 길을 택했다.
연 20~30회 공연으로 소리꾼 중 최고의 공연 횟수를 자랑하고 있다. 또 무거운 가르침, 위계가 뚜렷한 사제관계는 지양해 왔다. 소리에 있어서는 예외를 두지 않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언제나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한다.
소리꾼 길로 45년 여를 걸어온 그는 20~30년은 해봐야 비로소 소리의 참맛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자기가 내지른 소리에 심취해 어느 순간 오묘한 소리가 나올 때 그 전율이 바로 끼가 아닌가 했다.    
인천에서 무형문화재 전수관을 지어 우리것을 지켜내고 보존하자는 의지에 감사한다며 뒤를 이을 제자 양성에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악전공을 한 학생도 졸업 후 생계 때문에 다른길로 가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 넘는다고 지적한다. 그나마 스스로 개척하고 노력하고 창출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야이기에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불투명, 자신있게 이 길로 이끌지 못한다고 밀했다.    
최근에는 문화센터나 복지관 등에 프로그램이 많은데 거기서 잠깐 배운 소리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라고 꼬집는다. 김 보유자는 올바르게 배워야 하고 특히, 인성과 실력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학동 무형문화재전수관 휘몰이잡가 교육은 월·화·수·금요일, 어린이반은 토요일까지 개인과 단체별로 다양하다. ☎010-6850-1051
최향숙기자 essaych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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