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인물

1953년 인천시립박물관 이경성 관장이 발간한 『인천의 고적(古蹟)』에는 인천의 불교 유적으로 학익동의 연경사 터(衍慶寺 터)·학림사 터(鶴林寺 터), 문학동의 길마사 터(吉馬寺 터)·문학사 터 등에 대한 조사 보고가 있다. 광복 후 시립박물관 이경성을 단장으로 하는 인천고적 조사단에 의해 발굴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사찰의 이름은 원래의 명칭이라기 보다는 소재지를 사찰명으로 하여 새롭게 붙여진 이름이기는 하지만 이 지역에 적지 않은 수의 사찰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 중 학익동에 소재했던 절터의 명칭을 여타의 사찰명과 달리 학익사가 아니라 학림사라 한 것은 아마도 다른 지역과 달리 다수의 유물이 발견됨에 따라 차별화한 것으로 보여져서, 학익동의 무성한 숲속에서 발견된 사찰의 터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하지만 학림(鶴林)은 부처가 입적하고 나니 그 숲이 학과 같이 흰색으로 변하였다에서 유래한 용어로, 고려시대 인주이씨의 정치 사회적 비중과의 관계도 고려한 명칭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고려시대 인주이씨가 외척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허겸의 손자인 이자연(李子淵) 때의 일로, 그의 세 딸이 모두 문종(11대)비로 선입(選入)되고 장녀인 인예순덕태후(仁睿順德太后)가 순종(12대)·선종(13대)·숙종(15대) 세 왕과 대각국사 의천(義天) 등 10왕자 2궁주를 낳게 되면서 7대어향(七代御鄕)을 이루게 되었다. 그 중 대각국사 의천은 천태종을 개설하고 『속장경(續藏經)』을 조판한 한국 불교사의 한 획을 긋는 인물로, 출생은 개성이였지만 인주이씨를 외가로 했기 때문에 인천지역의 사찰과 결코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당시는 현재 조사 보고된 내용보다 더 많은 사찰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통시대 인천 지역의 사찰에 관한 기록은 1481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효일사(曉日寺, 소래산 기슭), 주안사(朱?寺, 남동구 간석동), 청량사(淸凉寺, 연수구 동춘동) 등 3곳만 기록되어 있을 뿐 현재 발굴·조사된 사찰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나마 이 후 편찬되는 읍지(邑誌)류에서도 이 사찰들이 모두 폐사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학림사의 존재는 제2차세계대전 말기 인천공립고등여학교(현 인천여고) 교장이었던 노무라野村가 학익초등학교 교정 부근에서 약간의 고려자기 조각과 주춧돌 그리고 기와 조각을 발견함으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이후 1949년 5월 인천시립 박물관 관장인 이경성 일행이 다시 답사하여 다수의 기와 조각과 청자를 발견하였다. 수습된 유물은 대부분 완형(完形)은 거의 없고 대부분 파편이다. 발견된 유물들은 청자 양가문 사발, 연우년명(延祐年銘) 기와 조각, 용문 치마 조각, 범자문(梵字文) 암막새, 청자 조각 등인데 특기할 것은 중수(重修), 연우사년삼월중수(延祐四年三月重修) 등 와편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발견되어 1317년(고려 충숙왕 4년)에 중수했음을 나타내고 있어 고려시대 사찰이었음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인근의 문학사에서도 백자 향로와 분청 상감 국화문 접시편이 수습되어 인천 지역의 불교문화가 번성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데, 고려시대 화려했던 불교문화가 이 지역에서도 융성했음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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