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옹진군 부잣집 셋째딸로 태어나 모습이 단정하고 선비같다 해서 붙여준 이름이 선비였다.
 
18세 되던 해 처음 보는 남편과 혼인식을 올린 다음날 남한으로 피난온 피난민 색시는 목포까지 피난살이를 하다 인천에서 터를 잡아 60여년을 살았다.
자식을 낳고 살던 28세 무렵 새색시에게 찾아온 지독한 무병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하대받던 무녀로 살기를 거부했던 그는 여러차례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아 자신의 운명을 천형으로 여기며 굿판을 이어왔다.
나이 50세가 넘어 천안에서 열리는 민속경연대회에 나가 우수상을 탔다. 전문가들은 독특한 황해도 평산소놀음굿판을 신명나게 엮어내는 그를 불러 시연을 요청했고 거기서 인정받은 소놀음굿판을 오늘까지 이어왔다.
글을 모르는 그가 줄줄 꿰고 있는 가사들은 황해도 평산 출신의 장보배(1915~1991)선생께 음성으로 배운 것들이다. 황해도 평산소놀음굿의 대가 이선비(82) 보유자는 이렇게 지난한 세월을 살아냈다.    
황해도 평산 지방에서 전승되던 놀음굿으로 풍년을 기원하거나 자손의 번창을 비는 경사굿의 한 거리다.
경사굿은 모두 열다섯 거리로 짜여 있는데 소놀음굿은 중간 부분인 제석거리 말미에 이어서 행해진다. 소를 형상화한 탈을 쓰고 노는 굿으로 마부가 재담과 노래를 하면서 농사를 모의한다.
굿에 등장하는 삼불제석, 애미보살, 지장보살은 불교의 신들로 지상에 내려와 고통받는 인간에게 복을 주고 좋은 길로 인도한다. 이것은 평산 소놀음굿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면이다.
특기할 것은 소놀음굿이 끝나고 나서 장수거리에서 모든 잡귀를 쫓는다는 뜻에서 쌍작두를 타고 그네뛰기를 한다. 작두날 위에 서서 그네를 타는 것은 전국에서 그 뿐이다.
뛰어난 예술성과 오락성을 보여주는 평산소놀음굿은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됐고 현재 인천과 강화, 김포 등지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선비 보유자는 보존회를 이끌고 350여 회의 전국 공연 및 해외공연을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활발히 펼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이 길로 들어선 60여 년의 세월을 후회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액을 물리쳐주고 좋은 기운을 불러 평탄한 삶을 이어주는 것이 그의 운명이고 숙명인 것을 오래전에 받아들였다. 평생 일부종사하고 한 길을 걸어온 무속인으로 평가한 전문가의 말대로 평생 굿판에서 다져진 이선비 보유자는 황해도 평산소놀음굿을 무속에서 전통문화로 발전시킨 구심점이 됐다.
다시한번 생이 주어진다면 뜻밖에어린이들 선생을 하고 싶어한다. 아이들을 좋아해 앞집 초등학생과 친구처럼 지내기도 한다. 쓰러질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는 보유자에게 나이는 한낱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들어맞는다.
오는 5월31일 오전 11시부터 화도진공원 야외무대에서 소놀음 공연을, 6월 7일 오전11시부터 4시까지 하직굿을, 7월25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까막까치 말씀적에를 공연한다.
최향숙기자 essaych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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