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짧은 한마디. "이서기 선생님이 돌아가셨답니다."
수화기 너머 지인의 목소리가 아득한 음악처럼 멀어져갑니다.
2007년도인가요. 이름없는 들풀이나 잊혀진 나무들, 들꽃들, 처음 듣는 나무이름까지 줄줄히 꿰고 있는 님을 보면서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했지요. 세월의 흔적이 주름길에 흐르는데도 산으로 들판으로 나갈 때면 사춘기 소년처럼 즐거워하던 모습에서 천상 자연을 닮은 사람이구나 싶었지요. 그렇게 나이스미추를 통해 기자라는 이름으로 만났고, 때로는 인생의 조언을 직설화법으로 쏘아주던 선배로, 문학산의 나무와 다람쥐와 들풀과 바람까지도 보호하려 날마다 산을 오르던 수호자로 참으로 바쁜 일상을 살아냈네요. 문학산의 작고 여린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뿐만 아니라 인천 둘레길을 내는데도 온 힘을 다 쏟았지요. 또 해박한 지식으로 숲해설가로 활동하며 많은 이들에게 자연과 친구를 맺어주기도 했고요.
2주전 아이템회의 때, 핼쓱한 얼굴로 제 옆자리에 앉아 있었지요. 우리 후배들이 까불대며 좀 더 입맛에 맞는 기사거리를 고를 때, 님은 말없이 미소지으며 다 들어주다가 맨 꼴찌로 남은 기사거리를 맡았지요.
그런데, 그 기사를 쓰기위해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평소처럼 친구분과 함께 한복집을 취재하셨다면서요. 그날 저녁까지도 기사마무리 해야 한다며 원고정리를 하셨다면서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정말 느닷없이 서둘러 가셨다고 아드님과 사모님께서 너무 애통해 하시는데 어떤 말로 위로를 해드릴지 황망할 뿐입니다.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지켜보고 배려해주던 인심좋은 아저씨같은 님을 기자회의에서도, 학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도, 문학산에서도, 불교신문에서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참 무심하고 쓸쓸합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보통 사람 같으면 병원에서 치료하고 누워 있을 중병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 일상으로 살다가 정말 일상처럼 가버리셨네요.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명하지 않고 물 흐르듯 주어진 운명만큼 자연스럽게 살다간 멋진 이서기 기자님. 이젠 편히 쉬세요.
님이 가신 후에도 시간은 무심히 흐를 것이고 나이스미추도 여전히 발행될 것이고 사계절은 여지없이 순서에 맞게 돌아올 것입니다. 다만 신기루처럼 어느날 홀연히 사라져버린 이기자님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안타까워하는 지인들에게는 2015년 1월9일에 멈춰버린 시계를 하나씩 간직하고 있겠지요. 마지막까지도 진정한 자유인이었던 이서기 기자님, 편히 영면하십시오.     
나이스미추 명예기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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