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무형문화재 전수관에는 인천근해 갯가노래 뱃노래 보존회 회원들이 방학에도 쉬지 않고 나와 장구 장단에 맞춰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인천근해 갯가노래 뱃노래는 1970년대 인천교육대학 김순제 교수를 주축으로 발굴 전승, 1988년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 지금까지 기능보유자와 전승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갯가노래 뱃노래는 3면이 바다인 각 지역별 특성을 가지고 발달됐다.
서해안에는 어류가 풍부하고 크고 작은 섬들이 많아 예로부터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옹진군 덕적도에서 멀지 않은 강화 청골 등에서는 조기, 민어 등 어류자원이 풍부, 인근의 어선이 몰려들어 활동했고 썰물이 되면 아낙들이 갯가에 모여 조개 등을 채취했다. 옛날에는 노를 저어 바다로 나아가고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이를 육지로 운반하는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고독하고 험난한 과정이었기에 이들 사이에서는 외로움과 애환을 달래고 일치된 행동을 취하기 위해 자연 발생적으로 일노래가 나타나게 됐다.
이러한 노동요를 서해안 일노래라고 한다. 남정네들이 인천 근해에서 어로작업과정 중 불렀던 뱃노래 어선, 시선, 뱃노래와 아낙네들이 갯가에서 조개잡이를 할 때 불렀던 갯가노래로 나뉜다.
시선노래의 보유자이면서 인천근해 갯가노래 뱃노래 보존회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병기 선생은 우리 전통문화를 굳건히 지켜 후세에 남겨 주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뱃노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강화도 어촌 마을인 고향인 선생은 바다 일을 하며 노래를 부르시는 동네 분들을 보며 자랐다. 갯가노래와 뱃노래는 종류도 다양하고 배우기가 쉽지 않은 편이라고 말한다. 특히 노래를 부르면서 배에서 하는 행동을 일일이 재현해 내야하는 남자들의 뱃노래는 더 어렵다.갯가노래 뱃노래 공연은 여자는 갯가노래를 남자는 뱃노래를 담당하며 남여 최소인원은 30명이 있어야 한다.
자칫 모르고 노래를 들을 수 있으나 종류가 다양하다.
나나니타령은 연평도를 중심으로 근해 여러 섬에서 널리 불리워진 아낙네들의 소리로 새 연평소리, 나이나 소리라고도 한다. 자배기에 물을 담고 바가지를 엎어 띄어 나무젓가락과 똬리로 장단을 치는 것이 이채롭다.
 군음은 궁시렁 거리며 부르는 소리라는 뜻으로 경기만 또는 인천근해 여러 섬에서 불려진 아낙네들의 노래다. 굴을 쪼개거나 조개를 캘 때 불렀는데 남편을 바다로 내보낸 아낙네들의 소리인지라 그들의 한이 짙게 서려있으며 제법 음악적인 요소가 풍부하다
닻감는 소리는 배를 띄우기 위해 닻을 감아올릴 때 부르는 소리다.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 일대에서 많이 불러진다. 노 젓는 소리는 돛을 펴고 노를 저어 항해할 때 물살의 상태에 따라서 노 젓는 방법이 달랐으므로 느리게 부르기도 하고 빠르게 부르기도 한다.
배치기는 만선의 표시로 봉기를 달고 배위에서 기악을 반주로 흥겹게 노래와 춤을 추는데 어부들은 이를 배치기라 하며 뱃노래 가운데 가장 흥겹고 신바람 나는 즐거운 노래다.
종류도 다양하지만 노래 자체가 그리 쉽지만은 않아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연습해야지만 전수생, 전수 조교, 보유자 등의 단계를 밟을 수 있다.
김병기 선생은 "예능보유자들에게 지급되는 월 평균 전수 비용이 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기에 부족해 선뜻 생업으로 이어가겠다고 나설 사람을 찾기 힘든 실정"이라며 "현재 뱃노래 회원들의 평균연령이 고령이라 향후 10여 년 내외에 걸쳐 내용을 이어갈 전수생을 길러내는 일이 걱정"이라고 젊은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이곳 무형문화재 전수관 개관으로 연습하기에 좋은 조건이 갖춰졌다고 너무나 좋아하는 보존회 회원들은 빠지지 않고 모여 연습에 푹 빠져 지낸다"고 반겼다.
강현숙기자 power57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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