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문화재를 발굴하고 보존하고 계승하자는 취지는 박수칠 일이다. 하지만 먹고사는 기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영속성이 없고 계승 보유자들 스스로 언젠가는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배고픈 전통문화를 누가 하겠다고 덤비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전통 화살 제작법을 이어가는 3인 중 한사람인 박호준 궁시장. 그의 화살 제작 근원은 멀리 고종으로 올라가야 한다. 조부 박희원은 고종때 무신이었다. 당시 궁시장이 만든 활이 불편해 직접 자신에게 맞는 활을 제작하기 시작한 조부는 30여 년을 활을 만들었다. 그 뒤를 이어 아버지 박상준(1914~2001)은 17살때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70년을 이어오다 지난 2001년 작고했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 밑에서 이런저런 보조를 하던 박호준 궁시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어 받아 60여 년을 한 길을 걸어왔다. 현재 그의 아들 3명 모두 직장에 다니면서 화살 제작법을 이수했으니 궁시장 4대를 이어가는 셈이다.
"전통공예라고는 하지만 딴것과 달리 활은 무기다. 만드는 사람의 심성에 따라 무서운 흉기가 될 수도 있고 전통을 이어가는 문화재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무형문화재교육전수관에 입주하면서 시민을 상대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고충을 털어 놓는다.
전통 무예인 국궁이 시들해지고 양궁이 떠오르면서 활을 찾는 이들이 뜸해졌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쓸만한 대나무를 구입해 불에 구워 곧게 펴고 값비싼 부레풀(민어부레), 쇠심줄, 꿩 깃 등 구하기 힘든 재료들은 고사하고 화살 한 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정교함과 정확성과 인내는 공들인만큼 보람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후대에 남겨질 문화재로서 가치와 일반적인 소장용으로만 팔리는 시장성 때문에 전통문화를 지키고 가업을 잇고자 하는 박 궁시장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전통문화를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현실적인 벽 앞에 무기력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좋은 화살은 그의 조부처럼 "쏘는 사람의 체격과 힘, 습관에 따라 명중률이 달라지기에 그 사람에게 맞는 화살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고마운 것은 먼 훗날이 되겠지만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나서준 점이다.
60여 년을 한 길을 걸어오면서 몇 번씩 도망가고 싶었다는 박 궁시장은 빈약한 지원금도 계승자들을 힘들게 하지만 노후에 병이 들어도 대책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나 문화재청에 수차례 건의를 해봐도 감감 무소식이다. 가족의 고통과 먹고 사는 것에 초연해져야 우리 것을 이어갈 수 있는 현실과 그나마 남아 있는 장인들이 모두 고령이라 국가적 보호가 없으면 그 맥이 끊길 위기라고 강조한다.    
화살 한 개를 완성하려면 120번 정도의 손길이 가야 하는 궁시장은 1971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1978년 부친이 궁시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이어 그는 2008년 5월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기능보유자로 인정됐다.
궁시는 활과 화살을 만드는 사람으로, 활을 만드는 사람은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시장(矢匠)이라 한다.
최향숙기자 essaychs@hanmail.net
우리나라에서 전통 화살 제작법을 이어가는 3인 중 한사람인 박호준 궁시장. 그의 화살 제작 근원은 멀리 고종으로 올라가야 한다. 조부 박희원은 고종때 무신이었다. 당시 궁시장이 만든 활이 불편해 직접 자신에게 맞는 활을 제작하기 시작한 조부는 30여 년을 활을 만들었다. 그 뒤를 이어 아버지 박상준(1914~2001)은 17살때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70년을 이어오다 지난 2001년 작고했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 밑에서 이런저런 보조를 하던 박호준 궁시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어 받아 60여 년을 한 길을 걸어왔다. 현재 그의 아들 3명 모두 직장에 다니면서 화살 제작법을 이수했으니 궁시장 4대를 이어가는 셈이다.
"전통공예라고는 하지만 딴것과 달리 활은 무기다. 만드는 사람의 심성에 따라 무서운 흉기가 될 수도 있고 전통을 이어가는 문화재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무형문화재교육전수관에 입주하면서 시민을 상대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고충을 털어 놓는다.
전통 무예인 국궁이 시들해지고 양궁이 떠오르면서 활을 찾는 이들이 뜸해졌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쓸만한 대나무를 구입해 불에 구워 곧게 펴고 값비싼 부레풀(민어부레), 쇠심줄, 꿩 깃 등 구하기 힘든 재료들은 고사하고 화살 한 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정교함과 정확성과 인내는 공들인만큼 보람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후대에 남겨질 문화재로서 가치와 일반적인 소장용으로만 팔리는 시장성 때문에 전통문화를 지키고 가업을 잇고자 하는 박 궁시장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전통문화를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현실적인 벽 앞에 무기력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좋은 화살은 그의 조부처럼 "쏘는 사람의 체격과 힘, 습관에 따라 명중률이 달라지기에 그 사람에게 맞는 화살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고마운 것은 먼 훗날이 되겠지만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나서준 점이다.
60여 년을 한 길을 걸어오면서 몇 번씩 도망가고 싶었다는 박 궁시장은 빈약한 지원금도 계승자들을 힘들게 하지만 노후에 병이 들어도 대책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나 문화재청에 수차례 건의를 해봐도 감감 무소식이다. 가족의 고통과 먹고 사는 것에 초연해져야 우리 것을 이어갈 수 있는 현실과 그나마 남아 있는 장인들이 모두 고령이라 국가적 보호가 없으면 그 맥이 끊길 위기라고 강조한다.    
화살 한 개를 완성하려면 120번 정도의 손길이 가야 하는 궁시장은 1971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1978년 부친이 궁시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이어 그는 2008년 5월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기능보유자로 인정됐다.
궁시는 활과 화살을 만드는 사람으로, 활을 만드는 사람은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시장(矢匠)이라 한다.
최향숙기자 essaychs@hanmail.net
- 이전글 “동백꽃 활짝 핀 봄날에 쭈꾸미 먹으러 가자~”
- 다음글 김정욱의 영화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