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 구석, 병원을 나서는 여자, 셋째 유미다. 작은 생명이 사라졌다. 죄책감과 허탈감, 원망으로 쳐다보는 하늘은 그저 어둠뿐.
이들 유숙과 유정, 유미는 자매간. 해외에 근무하는 부모님과 떨어져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본 작품 <세 여자>는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곧 인류가 탄생한 이래 남자와 여자가 겪어왔던 수많은 시행착오들의 역사를 답습하고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신중하고 단정한 성격의 유숙은 거침없이 감정을 뱉어놓는 유정의 남친 근우가 몹시 못마땅하다. 그런 무례함을 남자다움으로 받아들이는 유정은 그런 언니가 야속하다. 하지만 어쩌랴. 불행한 결혼생활과 불신감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된 유숙이 충실하지 못한 남자를 좋게 봐줄 수가 없는 것을.
그런 와중에 돈을 잃어버린 유미의 남친 태왕이 잠시 신세를 지러 오고, 유숙의 남편 정원까지 등장하면서 그녀들의 갈등은 마치 기름을 부은 모닥불처럼 빨갛게 힘을 더해간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도 간신히 생활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애교 많은 막내 유미 덕분이다. 그런 어느 날, 그렇게 밝고 아기 같던 유미의 가슴에 독수리 발톱으로 할퀴어 뜯긴 상처가 있고, 그 원인이 바로 그 누구도 아닌 유정의 남친 근우라는 것이 드러난 순간, 극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헤어졌는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까만 그슬림으로 남아있는 사랑의 흔적만 보일 뿐. 그녀들의 가슴속에 쌓이고 쌓였던 속내가 봇물처럼 터져나온다.
사랑했기에 지켜주고 싶었던 마음은, 구속이 되어버리고, 사랑했기에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은 상처가 되어버렸다. 사랑했기에 숨기고 싶었던 마음마저 위선과 질투로 매도당해 버렸다. 그녀들은 망가진 마음을 끝내 추스리지 못하고 결별로 이어진다. 드라마에 흔히 있던 혈연에 대한 집착은 보이지 않는다. 형제는 부모라는 중심점을 잃으면 결국 흩어지기 마련이다. 문득 사랑은 그치지만 그칠 때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던 황동규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그래도 이렇게 헤어지면 안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연극은 성공이다. 비록 큰 상처를 입었지만 그녀들은 별 탈 없이 앞으로의 인생을 잘 살아갈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만남을 갖고 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서로 눈치채지 못하고 품고 살아온 어떤 꽃이 피어나며 서로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극단 피어나의 연극 <세 여자(차흥빈 작, 손민목 연출)>는 작년 공동기획전에 이어 올해 인천항구연극제에 출품됐던 연극 <네 여자의 방>을 출연진을 모두 교체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러닝타임은 100분 가량, 8월 20일~9월 6일까지로 15세 이상 볼 수 있다.
연극은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여정을 느끼게 해주는 예술이다. 바로 눈앞에서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드라마, 그래서 단 한 마디라도 더 깊이 와 닿는다. 가을을 시작하기에 좋은 공연이다.
- 이전글 “도서관서 야간강좌 들으세요”
- 다음글 다문화 여성들의 수다 ‘떳다 수다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