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인물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계절, 가을이 깊어간다. 깊어지는 바람과 떨어지는 낙엽이 아까워 단풍도 보고, 땀도 흘리며 산을 오르고도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평일 내내 스트레스와 피로로 무거워진 몸과 맘인지라 휴일에는 부족한 잠을 채우며 게으름을 피우고도 싶다. 마음은 모두 다 하고 싶은데 현실은 시간도 지갑도 여유가 없다. 이럴 때 나는 가까운 로컬 산행을 추천한다. 가을 산에 대한 향수와 야생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한 한 조각 케이크 같은 로컬 산행, 건강하고 부담 없는 가을 산행. 오늘은 멀리 가지 말자, 문학산이면 충분하다.
 
문학산 등산길은 여러 갈래!
대중교통을 이용해 문학산을 종주하려면 동쪽에서는 연수구 선학역, 서쪽인 남구에서는 학익동 쪽이 제일 가깝고 편리하다. 그중에서 오늘은 남구가 자원순환과 체험환경교육을 위해 건립하고 있는 인천 업 사이클 에코센터와 10월 말 개장하는 생태공원 놀이터도 둘러볼 겸해서 학익동 쪽에서 시작해본다. 어린이들의 생태적 감수성을 키워줄 아기자기한 시설로 잘 꾸며진 에코센터 생태 놀이터를 지나면 나타나는 마을이 호미마을이다. 야트막한 지붕과 담장 사이로 난 골목길에 과하지 않은 색채의 벽화와 주민들이 골목에 내놓고 키우는 꽃 화분들이 즐거운 오늘 산행의 전주곡을 들려주는 듯 편안하고 기분 좋게 해준다.
문학산은 제2경인고속도로가 에둘러 지나고 있어 넘어가려면 통로를 잘 찾아야 하는데, 길게 걷고 싶다면 학익동 정광아파트 뒤쪽으로 난 작은 터널을 이용하면 된다. 어두운 굴 안으로 들어설 때의 낯선 느낌을, 익숙한 이야기의 나무를 심은 사람(장지오노 작)이야기 벽화가 맞아준다. 도시생활로 쌓인 비꼬인 충동들을 진정시켜주는 동굴 같은 느낌이다. 이내 산길을 오르면 구절초, 감국, 배초향 같은 가을 들꽃들이 한 무더기씩 피어 반긴다.
 
편안한 흙길 따라 나무그늘 이어진 능선길
주 능선길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난 가파른 나무 데크 계단을 따라 오르면 문학산 줄기의 서쪽 끝 노적봉이다. 차 오른 숨을 고르고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늘 갈 코스를 살펴본다. 동쪽으로 1년 전 개방한 문학산 정상이 오늘의 목적지이고 그 양 옆으로는 시가지가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서해바다와 송도신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 쪽으로 걷다보면 옥련동 방면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길이다. 주능선보다 한적하고 길가의 풀이 드리우고 있는 어느 시골길을 옮겨놓은 듯 정겹다. 부드러운 흙길을 지나면 꽤나 넓은 참나무 숲에 들어서는데 청설모가 나를 반겨준다.
문학산 능선길은 흙길이라 편안하다. 사람들의 많은 발 다짐으로 신작로라 할 만큼 넓고도 반반해졌고, 길가의 목책은 가이드 역할을 한다. 경사지 곳곳의 나무 데크도 잘 정비되어 있어 여기가 산인 것조차 잊고 걸을 수 있다. 능선길의 고민인 뙤약볕과 자외선 공포도 없다. 모자를 잊고 나왔어도 짙은 나무그늘의 시원함과 나뭇잎들 사이로 살짝살짝 비추는 햇살은 되려 청량감을 더해준다.
기분 좋을 정도의 숨가쁨이 찾아올 무렵 이내 연경정이다. 군부대가 문학산 정상을 독점하고 있던 1년 전까지는 문학산의 임시 정상 역할을 하던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자에 올라도 사방이 나무에 둘러싸여 시야가 가려진 단점이 있지만, 그때는 정상을 올랐다는 작은 목표를 확인하는 기쁨을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볼거리가 없어 아쉽다면 정자 안쪽에 양각으로 새겨놓은 연경정기를 읽어보며 땀을 식혀보자.
그 옛날 중국으로 물건을 팔러 떠나는 가족들이 세 번 목 놓아 부르며 이별했다는 고개길 삼호현(사모지고개)을 지나 문학산 정상으로 오른다. 중간기점 역할을 하는 이곳, 아래쪽으로 손두부, 감자전, 닭도리탕과 같은 식사와 안주로 좋은 음식점이 즐비하다.
막 산행을 마친 사람들이 요기를 하고 등산 후 여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다만 경관과 환경을 고려해 관리와 양성화가 필요하다.
 
탁트인 전망대서 남구 도심 한눈에
삼호현에서 500m쯤 걸으면 문학산 정상 입구가 나온다. 가는 길에 떡갈나무 숲을 지나게 되는데 넓직한 잎사귀들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파란 가을하늘이 참 예쁘다. 이 맛이다.
정상에 올라서니 지름이 100m쯤 될까 탁 트인 공터가 나타난다. 잘 보이는 곳에 문학산(217m)이라고 새겨진 큰 재개방 기념비와 전망대를 볼 수 있다. 그 옆으로 지난 봄까지 있던 군부대 펜스는 모두 사라졌다. 속이 다 시원하다.
정상에서는 남구 도심과 송도 신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해무 때문인가 뿌옇지만 평소에는 관악산도 보이고 오이도도 보이고 멀리까지 조망이 참 좋은 곳이다. 예로부터 군사요충지로 역할해온 이유가 있다.
군부대 막사와 얼굴에 검댕 칠을 한 젊은 병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만 빼면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 매 주말 정상은 음식을 앞에 놓고 둘러앉은 사람들로 장터처럼 북적인다. 정상에선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몇 장 찍어둬도 좋다. 사진을 찍으면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보고 촉발된 근질근질한 소유욕을 어느 정도는 달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딱 십 년 전일 것이다. 문학산 정상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한다고 하여 많은 시민들이 반대운동을 했던 기억이 났다. 50여 년간 군부대로 쓰이며 시민들의 접근이 금지되던 곳인데, 또다시 이어질 뻔 했던 것이 그때의 수고와 노력이 씨앗이 되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다행히 1년 전 10월 15일 인천시민의 날을 기해 문학산 정상은 50년 만에 시민들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개방에 대해서는 칭찬일색이다. 인천시 기념물 1호인 문학산성에 대한 조사가 잘 이뤄져서 원(原)인천 역사의 발상지가 제대로 복원되면 참 좋은 공간이 될 것이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물을 꺼내 마시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때마침 산에 가면 빨리 시장기를 느끼고 입이 궁금해지는 지라 냉동실에 있던 비스켓을 가방에 넣어뒀던 게 생각났다.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는 과자지만 부스러기까지 탈탈 털어 입에 넣었다. 만약 부엌이나 집에서 먹었다면 평범하거나 심지어 불쾌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음식도 땀을 흘린 데다, 발아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맛을 띠고 구미를 돋우는가 보다.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돌고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자니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
이쯤 되니 오늘은 그냥 여기쯤에서 산행을 마치고 싶어진다. 아침에는 문학산 동서종주를 계획하고 선학역까지 가려던 생각이, 당나라로 가던 길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어 되돌아갔다는 원효대사처럼, 이만 가볍게 마무리 하고 싶어진다.
문학산은 작은 산이지만 남구민들에게는 참 큰 산이기도 하다. 온종일 산의 품 안에서 놀거리, 쉼터가 가득 있다. 도시생활로 생긴 사람들과의 갈등, 내 맘을 시끄럽게 하던 잡념들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멀리 가지 않고 동네 근처에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가성비 높은 로컬 산행을 나는 오늘 문학산에서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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