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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촌 시장에 비가 내린다. 그 비를 맞으며 주안역 광장 앞에 선다. 거미줄처럼 늘어선 노선을 따라 연안부두로, 송도로 향하는 피곤한 발길들. 또다른 시에는 화장터가 있던 옛 주안 일대의 모습과 숭의동, 도화동이 그 시절의 삶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 소개한 소설 조혁신의 뒤집기 한판에 이어 남구를 소재로 한 시를 살펴본다.
신기촌 시장에 내린 비를 통해 만난 유정임 시인은 신기시장을 마음을 파는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신기촌 시장에 내린 비를 쓸 당시를 떠올려보면, 벌써 십 년이 훌쩍 지났어요. 지금이야 나름의 질서가 잡히고 많이 깨끗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시장 안이 어둡고 복잡했어요."
신기촌 시장에 내린 비를 읽다보면 사는 게 팍팍했을 시장 안의 상점들과 노점상들의 갈등이 훤하게 그려진다. 그들의 경계를 구분 짓기 위해 급하게 만든 콘크리트 화분과 빈 전대를 허리춤에 차고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상인들. 시인은 그 당시 유독 눈에 띈 것이 바닥에 적힌 글씨였다고 전했다.
"구호였던 거 같아요. 우리 생계를 책임져라 누런 종이 박스 위에 쓴 글씨였는데, 빗물에 번졌더라고요."
그때의 기억이 시가 되었다는 말에 이어, 신기촌을 표현한 또 다른 시를 최무영 유고 시집에서 만났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시인의 속내를 들을 수 없지만, 시가 발표됐던 1974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말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침묵의 행렬에서
겹겹의 한지로 싸여지는
한 웅큼의 유골을 받아들면
나의 두 손은 싸늘하고
이승과 저승의 사이는 너무도 멀다
신기촌에서, 일부
 
싸늘한 유골을 받아 든 시인의 두 손. 지금에 와서 그것이 누구의 유골인지 추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느 누구에게든, 죽음은 혹독한 겨울만큼 쓸쓸하다. 신기촌에서라는 시의 제목에도 알 수 있듯이 1970년대 말까지 지금의 주안 7동 일대는 화장터와 공동묘지가 있었다. 수순을 밟아 거리가 정비되고 공장이 들어서는 산업화가 시작되지만 가난은 여전히 남의 집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였다.
도화 2동에서 십여 년을 살았던 장석남 시인은 그때의 기억을 담아 오동나무가 있던 집의 기록을 1편과 2편으로 나눠 기록했다. 시인이 기록하고 있는 그 시절의 삶이 가난이었듯, 김중식 시인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그려진 배경 중 일부인 숭의동도 가난을 대변한다.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엄태경 시인의 시에도 숭의동이 등장한다.
 
숭의파출소 끼고 도는 길에
비둘기 한 마리
장마에 기댄 날씨를 염려해서였나
빨간 장화
숭의동 비둘기, 일부
 
빨간 장화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가 쓰인 계절은 푹푹 찌던 여름이었다. "올해만큼은 아니더라도 무척 더웠어요. 마을버스 에어컨도 그리 큰 힘을 쓰지 못했어요. 그때, 버스 밖으로 비둘기와 눈이 마주쳤어요." 아주 잠깐, 이었다고 그 순간을 표현한 시인은 비둘기와의 눈맞춤이 신호라는 듯 버스가 출발했다며, 마음 한 구석이 간지러웠던 그날의 기억이 시가 됐다고 말했다. 이렇듯 작은 기억과 지우고 싶은 가난조차 작품이 되는 작가들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 시인에게 이에 대해서 물었다.
시인은 "당신이 우주를 얻고 싶거든, 당신의 고향을 노래하라"는 어느 사상가의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황경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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