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인물

연수구에 능허대 공원이 있다. 아파트에 도로에 둘러싸여 지금이야 그 안에 숨은 내력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실은 이곳 능허대는 오래 전 백제 근초고왕 시절부터 웅진 천도까지 약 백년간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이 후풍하던 객관이 있던 곳이라 한다. 옛사진을 보니 백사장 끄트머리에 가파른 절벽이 있어서, 그 위에서 바라보면 바람을 기다려 떠나가는 배들의 뒷모습이 자못 처연해보이기도 할 듯 싶다.
바로 이 절벽에 백제의 사신과 기녀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남아 있다.
극단 무대의 작품 능허대 바다(海)를 품다(진윤영 작)는 바로 그 전설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창작극으로, 2013년 뮤지컬로 재구성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정통극으로 형태를 다듬어 탄생했다.
근초고왕의 아들 태자 수가 사절단을 이끌고 동진으로 출항한다. 때마침 쏟아지는 비에 잠시 머물게 된 능허대에서 기녀 송화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삼국의 경계선에서 자객의 손에 가족을 모두 잃은 비운의 여인. 태자와 송화는 서로에게 반해 사랑의 언약을 하게 되지만, 태자는 비가 그치면 떠나야 할 사람. 아픈 가슴을 안고 기녀들은 기청제를 올린다. 이윽고 비가 멎어, 연인은 귀국길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잠시 이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행길은 결코 순탄치 않아 태자는 여러 고초를 겪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귀국을 해보니 국내외로 환난이 가득하여, 그는 또 많은 세월을 나라의 기틀을 잡는 게 보내야 했다. 한편 태자를 안타깝게 기다리던 송화는 스스로 왕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이후 왕위에 오른 태자가 찾아오지만 이미 송화는 없고, 그는 처절하게 통곡하며 백성들을 위한 성군이 되겠노라고 맹세를 한다.
내용을 들으면 가련한 러브스토리처럼 보이지만, 공연은 자못 스펙터클하다. 막이 오르면 무대는 백제의 왕궁과 산속, 바다, 고갯길을 분주히 넘나들며 변화하고, 주인공 태자 수와 송화가 만나기까지의 장면들이 이중무대 방식으로 교차하며 드라마를 채워준다. 태자와 기녀의 러브스토리는 그 위에 피어난 한 떨기 꽃이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사랑을 어긋나게 만들어버린 왜곡된 애정도, 그들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기녀들의 모습도 모두 발랄한 장식이 되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역사극에 향기와 재미를 준다. 여기에 자객과 호위무사들의 액션까지 가미되어, 연극은 마치 한 장의 생생한 역사화처럼 용트림친다. 캐릭터도 살아있다. 태자 수의 정치철학과, 충심어린 벗들. 이 작품의 주인공 송화도 기녀지만 무술과 예와 기를 닦은 여걸이다. 그런 그녀가 자살을 택하기까지의 과정은 한낱 치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왕과 나라의 앞날을 축복하는 몸짓이다.
예술감독을 맡은 윤조병 씨는 이 작품을 해석하며, 사랑과 역사 외에 우리 조상들의 철학과 휴머니즘, 진실과 도덕 등 굵은 줄기들을 찾아냈으며 이것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배우들과 함께 구현해내기 위해 애를 썼음을 밝혔다.
극단 무대는 불과 두 달 전에 테네시 윌리암즈의 대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상연했다. 그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이런 큰 작품을 준비했다. 그 수고에 감사하며, 이 작품이 인천의 컨텐츠로 자리잡아 시민들의 마음에 자부심을 더해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2월 7일(수)~12월 11일(일)까지 문학시어터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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