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상에 따라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도 변하고 있다. 그중 명절 풍속도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실속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달라지는 중이다. 물론 고향에 가서 조상을 찾는 등 전통방식으로 명절을 보내는 가정도 많지만, 최근 명절에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부모가 자녀들이 사는 도시로 역귀성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전통과 실속이 공존하는 명절 풍속도를 살펴봤다.
전통적 방식 따라 명절을 쇠다
“조상 없는 자손이 어디 있겠어요?”
결혼 34년 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하게 전통을 이어왔다. 어린 새색시는 당연히 시댁의 규범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이다. 시댁도 친정도 전통방식으로 명절을 쇤다.
김승덕(주안동·61) 씨는 명절 한 달 전부터 부산해진다. 북어포, 다과, 술 등 마른 음식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준비하다 보면 명절이 코앞이다. 송편도 손으로 빚는다. 허리가 끊어질 듯 힘들어도 가족, 이웃들과 함께 먹는다고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조상에게 올리는 음식은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는다. 식혜, 수정과, 나박김치는 필수다. 동태 부침을 포함한 대 여섯 가지 전, 소고기 산적, 갈비찜, 탕, 나물, 한과, 생선, 밤, 대추, 과일, 술, 두부부침, 떡, 조상을 모시는 밥과 국을 올리는 것으로 상을 완성한다.
하나밖에 없는 젊은 며느리는 크리스천이지만 함께하려는 모습이 예쁘기만 하다. 남편이나 아들, 며느리가 도와주면 걸리적거려 음식 준비는 혼자 한다. 남편과 아들이 도와주는 것은 밤 깎는 일이 전부다.
“음식은 푸짐하게 해서 이웃이나 경로당,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 냉장고에 두고 먹기도 해서 버리는 음식은 없어요.”
김 씨는 명절을 쇠는 것에 마음속으로도 투정 부려본 적이 없다. 본인이 죽고 나면 명절,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살아생전 명절 차례는 지금 방식 그대로 지내려고요.”
서로 존중해주는 명절이 되다
“10년 전부터 제사, 명절 스타일이 확 바뀌었어요. 시아버님이 앞장서셨죠. 며느리들 힘들고 음식도 많이 하면 버리는 일도 많다며 간소하게 차리고, 예의도 간략하게, 먹지 않는 떡은 과감히 제외했어요. 이제는 명절이 지나도 버리는 음식이 없어요.”
이현선(주안동·40) 씨는 결혼한 지 15년 된 주부다. 막내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결혼해서 처음 맞는 추석엔 끝도 없는 음식 장만으로 쉴 새 없이 종종거리다 결국 몸져 눕고 말았다.
한학을 수학한 시아버지가 전통을 고집하는 전형적인 유교 집안이었다. 차례상 네 개를 차려야 하고 오색 과일, 각종 나물, 포, 다섯 가지 이상, 전 등 그야말로 차례만을 위한 음식들로 상다리가 휘어졌다. 명절이 끝나고 헤어지는 자식들에게 바리바리 싸준 음식 보따리는 대부분 냉동고에 얼려져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옛 방식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그런 시아버지가 어느 날 선언을 했다.
“기제사나 명절은 죽은 조상을 기리는 것인데 살아있는 자손들이 고생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모든 기제사나 명절 음식이나 예법은 간소하게 할란다.”
1년에 9번이던 기제사를 3번으로 통합했다. 차례상은 밥, 국, 전(한 종류 한 접시 분량), 술, 나물, 과일 등으로만 메뉴를 정했다. 떡, 식혜나 수정과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생략했다.
간소화 후 두 아들 내외가 모이면 반나절 정도 음식 장만하고 나머지 시간은 영화를 보거나, 가볍게 외출을 하거나, 낮잠을 자기도 한다. 누가 더 힘들 것도 없고 누구 눈치를 보는 것도 없다.
다만 현선 씨는 아직 명절에 외국 여행이나 펜션 같은 곳에서 간략하게 차례를 지내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형식을 고집하지 않아도 조상을 기억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있어서 우리 것을 지키는 데는 문제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 추석에도 3대가 모이는 시댁 나들이가 즐겁다. 음식 장만 시간이 줄어들면서 아이들 재롱을 함께 보고 차 한 잔을 놓고 그간 살아온 이야기도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햄버거로 점심 한 끼를 대신하기도 하는 명절 연휴가 기다려진다.
“며느리들이 앞장서 명절 폐단을 문제 삼기는 쉽지 않죠. 연장자가 나서면 변화가 가능해요. 현재 중장년층이 훗날 연장자가 되면 전통을 잃지 않고도 서로 존중되는 명절 연휴가 정착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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