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인물

대한민국에 자주독립 만세운동 불길이 타오른 지 100년을 맞았다. 온 국민이 전국에서 펼쳤던 만세운동은 인천에서도 뜨겁게 타올랐다. 자유공원과 황어장터, 강화읍, 용유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목숨을 건 만세운동 물결이 이어졌다. 창영초등학교 만세운동 창영초등학교(인천공립보통학교)는 인천지역 만세운동의 발상지다. 1919년 3월6일 창영초등학교 학생들의 4일간 동맹휴업으로 인천지역의 첫 3.1운동이 시작됐다. 이 학교 3학년 김명진과 이만용, 박철준, 손창신 등이 일본의 연락 통로인 전화선을 절단하고, 수감되면서 인천지역 만세운동의 불을 지폈다. 현 창영초등학교 교정에 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자유공원(만국공원)도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이자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자 회의가 열린 곳이다. 3월9일 자유공원과 근방에 수백 명의 시위대가 독립만세를 외치다 해산했다. 황어장터 만세운동 황어장터는 3.1운동 당시 장날을 이용해 수백 명이 만세운동을 일으켜 인천지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만세시위가 있었으며 강서지방 최초의 만세운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1919년 3월1일 거족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계양주민들도 3월24일 오후 2시경 심혁성의 주도하에 장기리 황어장터 장날 6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심혁성을 중심으로 임성춘, 이은선, 윤해영, 이담, 최성옥, 전원순, 이공우 등 천도교인, 기독교인, 농민 등 계양주민은 일제의 고문과 진압에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강화 만세운동 1919년 3월18일 강화읍터에 유봉진 선생의 지휘로 1만 명이 넘는 강화주민들이 만세를 불렀다. 강화 진위대장 이동휘 선생 지휘 하에 있던 유봉진 선생은 온수리 길직교회 권사로 이진형 목사, 선두리교회 황유부 전도사 등 교회지도자들과 결의, 지방 단위로는 가장 큰 규모였던 강화 3.18만세운동을 이끌었다. 강화 만세운동에 쓰일 독립선언서를 등사, 인쇄한 선두리 교회는 강화 진위대장 김동휘가 다니던 교회이며 잠두교회 청년교인 7명이 독립유인물을 인쇄, 배포한 강화잠두교회와 함께 3.1운동의 중요 장소다. 이밖에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중위를 죽인 혐의로 수감된 백범 김구 선생이 탈옥한 곳으로 알려진 인천 감리서 터, 1919년 3월28일 용유면 주민 150여 명이 관청리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인 용유면 만세운동, 강화 선원면 더리미 지역은 김동수권사와 김남수, 김영구 등 3형제가 반일운동을 하다 일본 헌병에 의해 살해당하는 등 강화의 만세운동은 한 달 동안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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