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미추홀구청(당시 남구청)에서 통합사례관리사로 첫발을 내디딘 지 한 달쯤 지났을 때다. 숭의4동 행정복지센터로부터 의뢰가 왔다. 정신과적 문제를 보이는 아내 때문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가정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숭의4동 사회복지 담당자와 함께 그 댁을 찾아가니, 심성 고와 보이는 김 씨(가명)가 우리를 맞이했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그의 아내는 털모자를 눌러 쓰고 웅크려 앉은 채 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 집사람은 10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어요. 그런데도 치료나 약물 관리를 하지 못했어요. 우울과 무기력감으로 집안일이나 외출은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요. 늘 죽고 싶다며 목숨을 끊으려하고요.”
김 씨는 아내를 돌보느라 집에서 부업하고 있었다. 당연히 수입이 적어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겪고 있었다. 아내의 건강 상태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적인 개입이 필요해 보였다. 즉시 인천미추홀구정신건강복지센터(당시 남구정신건강복지센터)에 사례관리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김 씨 부부를 도왔다.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와 동행해 상담한 후, 통합적 사례관리를 위해 기관별로 역할을 분담했다.
사례관리팀에서는 주 사례관리 및 공적 서비스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아내의 치료와 복약 관리 등 서비스를 지원했다.
그렇게 순조로운 두 달이 흘렀다. 봄빛이 화창한 어느 날, 김 씨한테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몹시 불안하고 다급했다.
“집사람이 이상해요! 욕하고 집안 물건을 부수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격한 행동을 해요. 집을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기도 하고요. 사람 혼을 쏙 빼어버리니, 더 이상은 이렇게 못살겠어요.”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와 나는 서둘러 그를 찾아갔다. 그의 아내는 섬망 증세, 불면, 과잉 행동 등을 보였고 대화조차 횡설수설했다. 입원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저렇게 싫어하니 강제로 입원시킬 순 없겠어요. 어쩌죠?”
김 씨는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주저했다.
아픈 아내를 깊은 사랑으로 걱정하는 그,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 그런 김 씨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지금은 고통스럽겠지만 치료를 위해선 마음을 단단히 가져야 해요. 아내분께서는 꼭 좋아지실 거예요.”
나는 김 씨에게 긍정적인 기대와 희망을 갖도록 북돋아주었다.
마침내 김 씨가 결정을 내렸고 얼마 후, 아내의 치료가 진행됐다. 장모의 동의하에 아내를 강제 입원시킨 것이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제발 집에 데려가 줘요!” 김 씨의 아내는 병원에서도 줄곧 퇴원을 요구했다.
그때마다 김 씨는 흔들렸다.
“우리 행복하게 살아봅시다. 그러려면 반드시 치료받아야 해.”
다행히 김 씨는 묵묵히 아내를 다독이며 격려했다. 아내를 완쾌시키고 웃음을 되찾아주려는 그의 의지는 갈수록 강해졌다.
사실, 아내를 끔찍이 아꼈던 만큼 김 씨는 아내의 빈자리가 생기자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힘겨워했다.
나는 그를 자주 찾아갔고, 지역 통장님도 수시로 후원물품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그와 지역사회 관계망이 더 견고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의 응원 때문일까. 마음씨 고운 김 씨는 활기를 되찾았다.
“복지사님 집집마다 방문하기 힘들 텐데, 오늘같이 더운 날엔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하세요.”
그는 내가 갈 때마다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겨주었다.
이윽고 김 씨의 사랑은 작은 기적을 만들었다. 그의 아내가 치유된 것이다.
“요즘 아내는 일주일마다 스스로 병원에 찾아가요.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자활근로 사업까지 참여하고 있어요.”
그가 신바람 난 표정으로 자랑했다.
만약 김 씨의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치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한 일은 그의 의지가 흔들리거나 약해지지 않게 옆에서 지지해 주며 방법을 모색하고 그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거든 것이다.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가정이라는 꽃수레를 끌 때 작은 정성으로 밀어준 셈이랄까. 앞으로도 그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거들어 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