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동 도로가의 한 건물(석정로 301번길 13) 안에서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가득하다. 에어컨에선 찬바람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아이들의 땀을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아이들의 머리카락은 땀에 젖었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들락날락하며 넓은 공간을 종횡무진 뛰어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바닥엔 매트가 깔려 있어 크게 다칠 위험도 없다. 지난 5월 인천시 희망지 사업에 선정된 주민모임 ‘예그리나’에서 마련한 공간이다.
희망지 사업은 저층 주거지 등 정비구역 해제 지역과 노후불량 주택 밀집 지역을 대상으로 주민이 직접 마을계획을 수립·실행하는 사업이다. 인천시에서 주민역량 강화를 돕고 마을 환경개선 등 필요한 소규모 실천사업을 위한 예산과 인력을 지원한다.
얼핏 들어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이 일에 자진해 뛰어든 이들이 있다. 김현영 예그리나 대표와 정혜진 팀장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도화2·3동은 저층 건물과 주택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하루 1천명 이상의 유아와 아동이 대화초등학교와 유치원을 통학하고 있지만, 좁은 골목에 주차된 차들로 안전한 통행로 확보가 어렵고 도서관, 놀이터 등 시설도 부족하다.
게다가 인근 지역에선 재개발 사업으로 아파트 주택단지, 정부청사, 공원이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이 지역 주민들의 박탈감이 커졌다.
“우리 동네가 높은 건물과 유흥시설이 없어 살기엔 참 좋은데,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요. 도서관도 한참 떨어져 있어서 이용하기 어렵고요.”
김 대표는 옆 동네 고층 아파트에서 살다가 층간 소음 문제로 4년 전 이곳 주택으로 이사 왔다. 주택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은 높지만 전형적인 구도심 주거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 특성상 아이와 주민들이 이용 가능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불편함을 느꼈다.
김 대표에게 이 사업을 먼저 제안한 이는 정 팀장이다. “학교 도서관이 4시 반이면 문을 닫고, 학교 운동장도 개방 시간이 제한돼 있어서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곳도, 잠시 머무를 곳도 없어요. 특히 요즘 맞벌이를 많이 하잖아요. 4시 반부터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집이나 거리에 방치되는 아이들이 많아요. 이 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풀어보고 싶었어요.”
정 팀장은 이 동네에 10년째 살고 있다. 그는 주안 5동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공동체를 꾸려 ‘염전골 마을센터’를 만들어 낸 과정을 본 후, 이 지역에서도 공동체 사업을 벌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16년 개관한 염전골 마을센터는 주민이 직접 시설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민공동 이용시설이다. 5층 건물에 무인 여성안심택배, 마을 일터, 소통 및 학습공간, 헬스클럽, 옥상 텃밭 및 주민 휴식공간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던 중 희망지 사업 공고가 떴고 신청서를 내보기로 마음먹었다. 5월 희망지 대상에 선정됐다는 발표가 난 후 일이 공간을 얻고, 공사를 하고, 사무실과 놀이공간을 꾸몄다. 이곳에서 주민과 함께 할 프로그램을 공모해 다섯 개를 선정했다. 주 1회 회의 날짜를 잡고, 원탁 토론 계획도 세웠다.
현재 대화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중심이 돼 활동하고 있지만 더 다양한 주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발할 계획이다.
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은 없다.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결과를 도출해나가는 과정이 이 사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가로등이 부족한지, 통행로가 불편한 지, CCTV 없는 곳이 있는지, 놀이터를 원하는지, 쓰레기로 골치가 아픈지, 다양한 욕구와 바람이 있을 거예요. 의견을 듣고 모으고 하나씩 해결해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질 거라 믿어요.” 김 대표가 힘주어 말했다.
당당하게 희망을 말하는 이들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정 팀장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마음을 모아 마을을 좋게 만들자는 건데, 이를 오해하는 시선이 있더라고요. 함께 하자고 제안했을 때 ‘왜 나한테 이런 걸 하라고 해?’, ‘왜 굳이 네가 나서?’, ‘그거 하면 돈 나와?’하는 답변이 돌아오면 맥이 빠져요. 그래도 이렇게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강의에 찾아와서 관심 보이고 응원해주는 주민들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죠.”
이 사업은 올 11월이면 마무리된다. 희망지 다음 단계인 ‘대상지’로 선정이 되면 실제 거점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이들의 가장 큰 바람은 내년 대상지로 선정돼 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이들에게 힘을 주는 이들 역시 사람이다. 두 사람은 이 사업을 통해 든든한 이웃을 얻었다며, 마을에 사는 맛을 조금씩 느끼는 중이라 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언니, 내 아이 좀 봐 줘!’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개인적으론 가장 큰 수확이에요. 마을에 이런 이웃이 넘쳐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구든 오셔서 같이 만들어 봐요.”
도화2·3동 주민들이 만들어 갈 마을공동체의 모습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문의 507-2811, 2812
심혜진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