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이용원을 운영하는 박문용(74) 씨가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그는 문학동 토박이로 부친부터 손자까지 4대가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충북이 고향인 선친은 밥벌이를 위해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손기술로 익힌 이발 솜씨로 이용원을 시작했다. 해방이 되던 해 친구들 권유로 문학동에 터를 잡았고 아들을 얻었다. 그 아들이 박문용 씨다.부친이 이발을 하면 자연스럽게 구경을 하던 그였다. 세월을 거쳐 구경만 하던 그는 가위를 잡았다. "몸이 불편해진 부친을 돕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일이 됐지."
천직처럼 여겼다. 따로 다른 일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초창기 시절 손님 얼굴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심지어 귀를 다치게 하는 불상사도 겪었다. 다행히 당시 손님들은 견습생의 고충을 이해해줬고 화를 내기보다는 기술연마를 위한 격려를 택했다.
예전의 이발관 용도는 다양했다. 문턱이 낮은 이곳은 편하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동네 사랑방이자, 지인들에게 전달할 물건을 편하게 맡겨 놓는 택배보관소였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만큼이나 정이 쌓이고, 물건들이 오가는 만큼이나 정을 나누던 곳이었다.
이제는 주인처럼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는 터줏대감도 없고,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손님도 없다. 손님 대부분이 장년과 노년층이다. 하지만 이사를 가도 10년 넘는 세월동안 문학이용원을 찾는 단골들이 있기에 가격도 편하게 올리지 못한다.
이용원과 함께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단골들은 부친 얘기며, 동네 얘기며, 추억어린 역사를 써가며 오래됨의 가치를 새긴다.
난로 연통에 면도거품을 쓱쓱 문질러 데우고, 장마철이면 냄새나지 않게 수건 말리느라 심혈을 기울이고, 환자가 있는 집까지 찾아가서 출장 이발을 하던 시절은 빛바랜 과거로 남았다. 손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가위 길이는 짧아지고 그만큼의 세월이 뒤안길로 사라졌다.
70대 중반이 된 그는 여전히 신문지를 잘라 면도 거품을 닦아낸다. 어린이를 위한 키 높이 선반은 50년이 족히 넘었다. 세발할 때 사용하는 의자는 40년이 됐다. 그의 손길을 따라 세월을 함께 한 도구들이 가게 안 곳곳에 숨어있다.
때마침 학교를 마치고 참새방앗간에 들린 손자. 이발관은 손자의 놀이터이자 할아버지와의 소통공간이다. 이용원의 휴일인 매주 목요일이면 손자와 문학경기장에 야구경기를 보러 가고, 운동장에서 야구 연습을 한다.
손님이 오지 않은 한가한 시간에 손자의 머리손질을 해 본다. 50년이 넘은 선반에 걸터앉은 손자는 아기 때부터 할아버지 손에 머리를 맡겨온 터라 의연하게 앉아있다.
"뭐든지 몰릴 때 몰리는 거야"라는 그의 말처럼 머리 손질을 하자마자 손님들이 연이어 들어왔다. 휴대폰을 보며 기다리기도 하고, 커피를 알아서 타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전한다.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건만 기계에 이어 가위를 잡은 그의 손길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손놀림에서 여유가 느껴진다.동네의 변화를 기억하는 가게, 누구에게나 편한 이웃이 되는 가게. 향수를 불러오는 가게, 소중한 가치를 지닌 가게. 바로 노포(老鋪)가 지닌 매력이다.
이 모든 것이 스며든 문학이용원은 오늘도 문학동 지킴이를 자처하며 오래된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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