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인물


주안3동 주민들, 6개월 동안 공동 작업


학산생활문화센터에서 1231일까지 전시


 


동네가 사라진 곳엔 무엇이 남을까. 재개발로 정든 마을을 떠나야 했던 주안3동 주민들이 자신이 살던 동네와 이웃의 모습을 대형 목판화에 새겼다. 주민들은 지난 5월부터 학산문화원 생활문화센터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무려 여섯 달 동안 판화작업을 해왔다. 사라져 간 동네를 기억하며 판화로 찍어낸 이들을 만나 판화와 동네,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간판도 없이 `슈퍼`라는 글자만 남은 단층 건물 앞. 평상에 세 사람이 편한 자세로 걸터앉아 있다. 담쟁이넝쿨이 무성한 담벼락 옆에서 정담을 나누는 이들의 이마엔 굵은 주름이 깊게 파여 있다. 뒤쪽으로 `대원수퍼`, `대양탕`, `한나루로` 글자도 또렷이 보인다. 가로 240, 세로 120대형 목판화에 새겨진 주안3동 일대의 모습이다.


학산문화원에서는 3년 전부터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대형판화 수업을 진행해왔다. 이른바 `커뮤니티(공동체) 판화` 작업이다. 공동체를 주제로 오랫동안 강의와 예술작업을 펼쳐온 문화기획자이자 꾸물꾸물문화학교 대표 윤종필 씨가 강사로 나서 수업을 이끌고 있다.


문학산, 수봉산, 주안염전, 신기시장 등 미추홀구의 곳곳이 주민들의 손에 의해 판화로 재탄생했다. 특히 올해는 지역문화진흥원 공모사업에 선정돼 주안3동 철거예정지역을 주제로 `동네, 살아지다`라는 제목으로 판화작업을 진행했다.


`주민 수강생` 10여 명과 윤종필 대표는 수차례 동네를 돌며 빈집들을 사진에 담았다. 옛 사진을 꺼내오기도 했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목판화에 밑그림을 그리는 건 윤 대표가 맡았다.


주안3동이 꽉 들어찬 커다란 목판을 가장자리부터 조각도와 끌로 파내기를 몇 달. 동네 사람들이 사랑방 드나들 듯 모여 국수를 삶아 먹고 과일을 나눠 먹던 `당진슈퍼` 평상, 유명 탤런트의 부모가 운영하다 문을 닫은 채 흉물처럼 돼버린 `대양탕`, 사자모형에 묵직한 쇠 문고리가 달린 대문, 전깃줄, 그리고 이곳에 살던 실제 이웃들과 고양이까지, 동네를 살아 숨 쉬게 한 모든 것이 판화에 오롯이 새겨졌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판화가 남았다. 판화 속 삶이 남았다.



학산문화원은 1028일 미추홀공원에서 `주안3동 동네전시 오프닝`을 열었다. 이 자리엔 판화작업에 참여한 이들뿐만 아니라 판화 속 실제 주인공과 주민 20여 명이 참석해 그야말로 흥겨운 동네잔치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을이 다 없어진다니 얼마나 서운했는지 몰라요. 오래 살았던 동네라 사람들이 굉장히 정겨웠거든요. (판화를 가리키며) 여기 간판 없는 슈퍼가 당진슈퍼인데, 저기 할머니하고 여기 아줌마, 저기 아줌마, 매일 모여서 국수도 삶아 먹고 볶음밥도 해 먹고 주안미디어축제 할 땐 노래도 같이 연습하고 그렇게 놀던 곳이에요. 그 사람들 이제 다시는 못 보겠죠." 이 마을에서 38년 살았다는 김현자(71) 씨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 판화는 우리한테는 추억이 담긴 판화에요. 굉장히 소중하죠."



당진슈퍼 사장 박정오(73) 할머니는 지난해 7월 동네를 떠났다. "국수 먹고 잔치하던 게 꿈에 보여요. 노래 부르고 동네 벽화도 같이 그리고 아줌마들이랑 율동하던 생각이 매일 나요. 헤어지니까 그립고 항상 보고 싶어요. 그래도 이런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 다리가 아픈데도 손주 데리고 택시 타고 왔어요." 박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비전문가들이 서툰 솜씨로 손수 만든 판화 한 점이 이토록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윤 대표는 "커뮤니티 판화는 잘 파고 못 파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지역의 이야기를 바로 그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크지요. 매주 모여서 함께 작업하면서 서로 안부를 궁금해하는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졌고요, 작품에 담은 내용도 공동체이고요, 작품을 이렇게 나누는 것도 공동체 활동이죠."


그는 공동체 작업으로 탄생한 작품들이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길 바라고 있었다.



"참여자 몇 명, 동네 주민 몇 명끼리만 공유하는 건 어떻게 보면 `공공적`이지 않아요. 작품이 만들어진 이후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나눌 건지 고민이 필요해요. 학산문화원에서도 공동체성을 중요하게 신경 쓰는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판화 작품은 학산생활문화센터 `마당`3층 커뮤니티홀에서 1231일까지 전시,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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