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인물

늘 다니던 길, 다 아는 길도 막상 지도로 그려내기란 쉽지 않다. 이걸 실감한 이들이 있다. 제물포역 인근에 있는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수봉로68번길 51)에서 `수봉산 둘레 마실길 지도`를 만들었다. <관련기사 1·8~9>

지도 제작을 위해 지난해 6월부터 드로잉 작가와 문화기획자 등 지역 예술가와 주민들은 마을탐색단을 꾸리고 숭의4동과 용현1·4동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샅샅이 훑고 다녔다. 특징 있는 건축물과 자연물, 식당이나 카페 등을 연결해 산책코스를 만들고 이를 지도 위에 얹었다. 반년 동안의 긴 작업 끝에 지난 1, 지도와 안내 책자가 세상에 나왔다.

탐방부터 사진기록, 지도 디자인, 편집과 책 발간까지 많은 일을 담당한 이는 서양화가 임현웅 씨다. 그는 수봉산 인근에서 30여 년 살아온 동네 터줏대감이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놀던 동네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천천히 걸으면서 살펴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수봉정류장`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공동 운영하는 장소다. "우리끼리 동네 지도 한번 만들어볼까?" 누군가 운을 띄웠고 다섯 예술가가 뭉쳐 직접 골목을 걸으며 각자 눈에 들어온 것을 사진으로 찍었다. 풍경을 펜화로 옮겨 책자에 서정을 더한 작가도 있다. 여럿이 함께 작업하니 각자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저는 전체적인 것을 주로 보는 편이라 사소한 것들, 예를 들어 명패나 대문 손잡이, 우편함 같은 것들은 신경도 안 쓰고 살았어요. 그런데 다른 분은 그걸 눈여겨보시더라고요. 생각해보니 그런 것이 주위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고, 우리에게 소중한 것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굴뚝과 커다란 나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카페와 동네 고양이까지, 늘 있었으나 쉽게 지나쳐왔던 풍경들이 예술가들에 의해 제 존재를 또렷이 드러낸다. 일상의 발견이다. 이렇게 만든 지도 2000부와 책자 800부는 구립도서관과 행정복지센터에 비치되어 있다.

임씨에게 이번 작업은 남다른 감회를 남겼다. 수봉공원 일대는 지금 한창 재개발 중이다. 주민들의 관심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운영 중인 `수봉정류장`도 올해 안에 건물을 비워야 한다.

"재개발 때문에 지금 제가 사는 집 주변으로 다 공사 중이거든요. 이전까지는 공사 소음이 시끄럽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지도 작업을 하면서 `동네가 너무 많이 변했구나, 이제 곧 다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깝더라고요."

그는 "우리 동네를 다시 한번 보게 됐다, 소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익숙했던 시선이 바뀌는, 흔치 않은 경험을 통과한 셈이다.

마실길 지도 만들기는 올해도 이어갈 예정이다. 곳곳이 재개발로 사라질지언정 기록은 멈추고 싶지 않다. 오히려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주민들의 소소한 생활사가 담긴 중요한 기록물이 될 것이다.

마실길 지도 한 장을 들고 동네를 돌다 보면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 이전과 이후는 분명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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