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데 때가 있을까. 공부하는 시기를 놓쳐버린 늦깎이 학생들이 간절함과 함께 연필을 잡았다. 바로 한길고등학교 이야기다. 한길고등학교는 인천 주안5동본당(주임 김태헌 신부) 부설 야학이다.
‘꿋꿋하게 바르게 참되게’라는 교훈을 가진 한길고등학교는 1987년 호인수 신부(인천교구 원로사목자)가 주안 공단에서 일하는 여공들을 위해 설립했다. 배움에 목말라 있던 여공들을 천주교회가 포용한 것이다.
성당 지하에 교실을 만들고 학생들을 모집했다. 2년 과정 학교는 1989년 제1회 졸업생 10명을 배출했고, 2005년에는 25명까지 늘어났다. 현재는 1학년 5명, 2학년 8명이 재학 중이며 학생들 연령은 주로 6~70대이다. 80세 학생도 한 명 있다.
유정열(가리노) 교감은 “몸이 좋지 않거나 집안 사정 등으로 출석률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은 10대 못지않아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수업이고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두 과목씩 배우는데 방학도 있고 소풍, 수학여행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여느 학교와 비슷하지만 비인가 학교여서 졸업을 해도 학력 인정은 되지 않는다. 대신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올해도 4월과 8월에 각각
2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방송통신대학에도 매년 1~2명씩 꾸준히 입학하고 있다. 동문회도 활성화돼 있어 선후배의 정도 두텁다.
이곳 교사들은 무보수로 가르치며 봉사한다. 대부분 퇴직 교사들이고 현직 교사도 있다. 교장 신부 포함 총 21명이 재직 중이다. 학생 수보다 교사 수가 더 많은 학교다. 교사들의 헌신과 학생들의 간절함이 만나 대부분 졸업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교사와 학생 모두 만족도가 매우 높다. 최근에 미추홀구 도움으로 인천 지역 기업들이 학교 리모델링에 나서줬다.
“지하라서 습하고 환기가 되지 않았는데 바닥, 천장, 벽 시공을 통해 쾌적한 환경이 됐어요. 조명도 LED등으로 바뀌고 제습기, 냉난방기도 설치해 재학생들은 물론 어쩌다 들르는 졸업생들도 무척 좋아하고 있어요.”
유정열(가리노) 교감은 “오히려 학생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어르신 학생들은 배움에 대한 간절함이 가득해요. 절대 졸지 않아요. 교사들은 하나라도 더 전해주기 위해 노력하지요. 수업 분위기는 정말 환상적입니다. 일반 학교에서 느낄 수 없는 행복을 이곳에서 만끽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유 교감은 처음 부임했던 4년 전 10월31일을 잊지 못한다. 그날 학생들이 촛불을 켜고 휴대폰에 저장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틀어 놓고 그 노래를 같이 불렀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10월 마지막 날이다. 그해 수학여행 첫날 버스에서 같이 부른 ‘여고시절’도 생각난다. 학령기로부터 몇십 년이나 지나 학교에 다니고, 수학여행을 떠나며 ‘여고시절’을 부르던 학생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 학생이 “이 노래가 유행할 때 저는 일을 했어요. 아마도 선생님은 공부를 했겠지요?”라고 물었다. 유 교감은 그때 대학생이었다. “맞아요. 저는 공부하고 있었어요. 고생하는 또래들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지금 이렇게 교사로 일하면서 그들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한길고등학교는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신입생을 모집한다. 비인가라 검정고시를 봐야 하지만 한길학교만의 좋은 점이 많다. 동문 간 돈독한 유대도 그중 하나다. 지금도 공연 관람 등에 동문들이 함께한다. 학과과정을 따라가고 동급생이 있고 선후배가 있고 선생님이 있다. 한길고등학교는 지식뿐만 아니라 학령기에 갖지 못한 관계망을 선물한다. 혹여 때를 놓쳐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분들이 찾아와 주길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