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부름에 목숨을 바쳐 조국 경제 부흥을 일으켜 세운 이들이 있다. 이역만리 전쟁터에서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투지를 불태웠던 젊은 청년들. 우리는 그들을 ‘월남 참전용사’라 부른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홍계표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미추홀구지회장을 만나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올해 참전 59주년이라고 들었습니다. 월남전은 어떻게 참전하게 되셨나요?
월남은 자원이 아니고 차출로 갔어요. 당시 부사관으로 있었는데, 군인은 상명하복이라 부름을 받으면 가야 해요. 군대는 학교를 졸업하고 지원해서 갔으니 20살이나 됐을까, 나이도 어리고 괴로웠지만 군인 정신으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부산에서 일주일 동안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이 베트남 퀴논이었어요. 멀리서 산이 보일 때부터 포성이 울리고 하늘에서 전투기 폭격 소리가 들리는데 암담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고독한 바다 위에서 죽어도 땅 밟고 죽자고 생각했는데, 도착한 곳은 폭탄이 빗발치는 희망이 없는 곳이었죠.
▶당시의 참상이 느껴집니다. 특별히 기억이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작전 중에 소대장이 중상을 입어 후송되는 바람에 선임하사였던 제가 다음 소대장이 올 때까지 책임자로 부대를 운영했었죠. 1년 동안 9개 전투에 참여했는데 그 참혹함은 말도 못 해요. 월남은 게릴라전이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게릴라전보다 더 무서운 게 평야 지대에서 매복하는 거예요. 피로에 지쳐 매복하다가 잠드는 일도 있었어요. 그때 한국에서 먹어보지도 못한 커피를 몇 봉씩 먹으면서 잠을 깨웠죠.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기후며 환경이며 무엇 하나 고국과 같은 게 없으니 힘들었죠. 특히 목마름이 힘들었는데, 작전 지역으로 가기 위해 도하하면서 강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몰라요. 미군에서 나오는 소독약을 수통에 한두 알 넣고 강물을 받아서 갈증을 해소했어요. 모기는 또 얼마나 많던지, 허우적거리면 그냥 잡히는 정도였어요.
▶함께했던 전우들도 기억이 많이 나실 것 같아요.
호국보훈의 달이 다가오면 더 많이 생각나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 오직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의지했던 전우들이잖아요. 안타까운 건 소대원들 이름이 기억 안 나요. 안부도 묻고 보고 싶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고 어디선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는 어떤 단체고, 미추홀지회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1964년 7월18일부터 1973년 3월23일까지 월남전에 참전하고 전역한 군인들로 구성된 단체로, 중앙회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지회를 두고 있어요. 미추홀지회에서는 환경과 안전 등 미추홀구 21개 동을 다니며 봉사하고 있죠. 유공자의 긍지를 가지고 솔선수범하고 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마을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배고픔을 겪으며 살았던 우리가 세계 10대 강국이 됐다는 게 꿈만 같습니다. 우리 후손들은 전쟁이라는 단어 자체를 생각하지 않게끔 국가와 국민 모두 안보의식을 고취해 살기 좋은 나라를 지켜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