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는 인원 `가능한 적게`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일상은 물론 고유 명절인 추석과 설날 풍경마저 바꿔놓았다. 비대면이 강조되면서 이동을 자제하고 지자체에서는 고향방문 자제 현수막을 내거는 등 명절을 맞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돌아오는 설날도 그동안과는 다른 `명절 쇠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 친지와 모여 정담을 나누던 미풍양속까지 해체시켜버린 코로나의 기습에 변화된 명절 모습을 담아본다.
"코로나 잠잠해질 때까지 가족 만남 미루려구요"
박상윤 씨(자영업·용현5동)
"3남 2녀가 안산 큰형님 댁에서 차례를 모시는데 코로나 이후 지난해 추석부터는 방역에 초점을 두고 모이는 인원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박상윤 씨는 그동안 차례상을 기본적인 상차림에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해왔다. 명절이나 기제사는 조상을 기억하고 기리는 의미지만 이런 기회로 만나기 힘든 가족들이 안부를 주고받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설날아침 차례가 끝나면 근처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다같이 참여할 수 있는 놀거리를 펼쳤다. 그중 빠지지 않고 이어온 것은 가족 단체 영화관람.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도 함께라는 소중함과 즐거움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코로나 후 지난 추석부터 1박으로 가족여행, 설날은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가족간 합의를 했다. 그러나 올해 설날엔 가능하면 각자 집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코로나가 사라지면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설엔 참석인원을 줄이는 것을 고심하고 있다.
"군인인 동생네는 군대 방역 때문에 올 수 없기에 설날 당일 아침에 모여 식사만 간단히 하고 헤어질 예정입니다. 성묘는 언제나 명절 전에 미리 다녀오는데 평소보다 경건하고 차분하게 보내려고 합니다."
"간소하고 차분하게 보낼 계획입니다"
김순옥 씨(구의원·주안5동)
김순옥 씨는 8남매의 맏이로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에는 6촌까지 15명에서 40명까지 모인다. 전통을 고수하는 집안으로 명절에는 반드시 형제 친지들이 모여 조상을 기리고 함께 우애를 다지는 것을 중요한 가풍으로 삼았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지난 추석 때는 전혀 다른 명절을 보냈다. 비대면 방역이 중요해서 집에서 모이지 않고 음식을 준비, 고향 산소로 내려갔다. 이때도 가까운 형제들만 산소에 모여서 간단히 제사를 모시는 것으로 차례상을 대신했다.
이번 설도 참석인원이나 장소 등을 고려해서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그동안은 동서들, 딸, 며느리 등 명절 전날 모여 음식 장만을 했는데 코로나가 진정될 때까지는 비대면을 철저히 지키려고 합니다. 친척들에게는 오지 말라는 통보를 미리 했습니다."
이어 "음식 만들 때도, 가족끼리 정담을 나눌 때도 마스크는 벗어서는 안된다"며 "안전한 명절 보내기에 다함께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 형제들 다른 때 만날 겁니다"
김승덕 씨(주안동)
전통을 지키는 제례를 고수하는 김승덕 씨는 34년 동안 전통 차례상을 고수해 왔다. 조상에 올리는 음식은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는다. 식혜, 수정과, 나박김치는 필수다. 동태 부침을 포함한 전, 소고기 산적, 갈비찜, 탕, 나물, 한과, 생선, 밤, 대추, 과일, 술, 두부부침, 떡, 조상을 모시는 밥과 국을 올리는 것으로 상을 완성했다.
그러나 올 해는 절차를 준수하되 음식 양을 줄이고 친척들에게 방문 자제를 요청할 예정이다. 지난 추석부터 참석자 숫자를 줄여왔다.
김 씨는 "차례 모시는 집에서 먼저 친지들에게 참석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 서로 편하지 않을까 한다"며 "부모님이나 형제 친지들은 평소에 자주 만나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고 조언했다.
"아들 집 잠깐 다녀오려고 합니다"
이은표 씨(88·도화동)
이은표 씨는 배우자 사별 후 혼자 된 지 3년이 넘었다. 배우자가 살았을 때는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정성껏 기제사를 모셔왔다. 명절에도 자식, 손주들과 평범하게 보냈다.
사별 후 아들에게 기제사를 모두 넘겼다. 본인 한 몸만 움직이면 되기 때문이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지만 조상을 모시는 풍습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어 아들 집에서 간단히 상을 차린다. 성묘 다녀오는 것도 쉽지 않아 당일 상황에 따라 아들과 의논할 생각이다.
"코로나 때문에 하루 전날 아들집에 가기도 위험하고 비대면을 해야 하니 명절 당일 잠깐 갔다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1년 동안 집안에서만 살고 있다는 그는 집안에서 TV시청, 간단히 컴퓨터로 소식 듣는 게 전부다. 변화가 있다면 최근 복지관에서 시니어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답답하면 노트를 펴놓고 영어 단어를 복습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씨에게 설날이라고 특별할 건 없다. 먼저 간 배우자가 더욱 그리운 하루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한 명절이, 어떤 이에게는 평소보다 더 힘든 날들이 될 수도 있는 명절. 더구나 코로나19까지 겹쳐 직접 대면이 어려워지면서 가족 친지간 정담을 나눌 수도 없다.
사람이 붐비는 명절을 피해 미리 성묘도 다녀오는 등 조상추모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벌초대행업체가 성황중이고 추모 납골당에 모신 조상들께 참배하는 것을 대행하는 서비스업체도 생겨나는 등 변화하는 시류에 맞춰가는 추세다. 온라인 추모나 온라인 성묘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다.
기제사 풍습도 변화하고 있다. 제사를 1년에 한번 합해 모시는 집도 있고, 명절 때만 차례상에 제사상을 더하는 집도 있다.
이렇듯 코로나는 전통과 변화의 전환점에서 때로는 아쉽게, 때로는 합리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