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조들을 꼭 기억해 주세요”
강제로 주권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헌신한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독립운동가라고 부른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후손이자 광복회 인천광역시지부 미추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정양택 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먼저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정운기 애국지사의 후손 정양택입니다. 1935년생으로 1945년 8월 15일, 빼앗긴 주권을 되찾았던 광복의 환희를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아버님이 독립운동을 하신 정운기 애국지사라고 하셨는데요. 아버님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있으실까요?
아버님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충북 괴산 사람인데, 경상북도 풍기(현 영주시)에서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채기중, 유창순, 유장렬, 강순필, 정진화, 한훈 이분들하고 같이 ‘풍기광복단’을 결성해서 활동하셨다는데, 제가 워낙 어릴 때라 전해 들은 이야기예요. 활동이 발각돼 대전형무소에서 5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나온 뒤에도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셨습니다. 그때도 활동이 발각돼 경성복심법원까지 갔는데 면소되어 옥살이는 면하셨어요.
▶ 당시 가족들의 생활이 편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항상 집에 일본 경찰들이 와서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독립운동하다 옥고를 치른 뒤라 또 어떤 활동하는지 감시했던 거죠. 감시가 심해서 독립운동을 제대로 못 하셨어요. 집에 한학당을 차려 동네 아이들을 모아 한문을 가르치셨습니다. 저도 8살 때까지 아버지께 한문을 배웠어요.
▶ 8월 15일 광복절이 다가오면 아버님이 더욱 생각나시겠어요.
아무래도 그렇죠. 아버님이 해방되고 이듬해 3월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김구 선생님이 초청해서 서울에 다녀오셨어요. 그때 아버님께 한자리를 부탁하셨나 봐요. 근데 저희 아버님이 굉장히 고지식하셨거든요. 그걸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와 얼마 안 있다 돌아가셨어요. 지병은 없었지만, 연세가 70이 넘기도 했고 아무래도 독립운동할 때 잘 잡숫지도 못했던 여파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큰형님도 독립운동하는 아버님을 쫓아다니면서 뒷바라지하다 해수병을 얻어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거든요.
▶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광복회 활동에 자부심이 남다르실 듯합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아버님이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신 그 의지를 따라서 저도 그 뜻에 못지않은 자식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광복회에서는 운영위원회로 활동하면서 회원들과 만나 운영에 대해 서로 의논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보면 여전히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들이 많습니다. 독립유공자나 그 후손에 대해 넓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배려하고 도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광복회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조들의 활동을 후대에 알리는 일을 열심히 해야겠지요. 후손들이 선조들의 희생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정운기(鄭雲淇)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에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채기중(蔡基中)·강순필(姜順弼)·한훈(韓焄) 등의 동지와 풍기에서 광복단을 결성해, 무기를 비축하고 군자금을 수합하며 독립군 양성을 준비하였다. 1914년 보은군 보은면장 박창빈(朴昌彬)으로부터 10자루의 권총을 인수하여 비축하였고, 그 중에서 1자루는 이강년(李康年) 휘하에서 활동하던 김재성(金在性)에게 주어 박영효(朴泳孝) 등 친일파의 처단에 사용하게 하였다. 이 혐의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5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풍기광복단이 대한광복회로 발전한 것을 보고 다시 광복회에 가입하여 군자금 수합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친일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한 채기중·강순필 등을 몰래 피신시켰다.
▲ 풍기광복단
1910년대에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이 결성한 항일운동단체이다. 이름과는 달리 풍기 출신은 거의 없고 비밀결사에 적합한 풍기에서 결성되어 ‘풍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한광복단’이라고도 한다. 경상도 북부와 충청도 출신의 의병운동 참가자들이 주도하여 조직하였다. 주요 활동은 무기 구입, 군자금 모집, 단원 보강이었는데 외곽조직을 두지 않고 철저하게 비밀활동을 유지하였다. 1915년에 조선국권회복단과 영남의 항일세력을 규합하여 대한광복회로 발전시켰다. 가장 전투적인 항일단체로 전국적 지부망을 갖추고 국내 항일운동을 선도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