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에서 유화까지…평생을 그림과 함께
평생을 화가로 살아가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 하지만 하늘로부터 어떤 재주를 부여받은 천재라 할지라도, 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 등의 이유로 타고난 재능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견 서양화가 노희정 선생 역시 ‘그림 그리는 재주’를 타고난 천재였다.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선택받은 천재로의 삶이 탄탄대로로 펼쳐진 듯 했다. 하지만 시련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가난은 그의 재능을 펼치는데 걸림돌이 됐다.
인천중학교 입학 초기 미술반 활동으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학비는커녕 도화지도 살 수 없는 가난을 경험하게 됐다. 화가의 꿈을 이루는데 첫 시련이 찾아 왔지만 친구들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그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난은 그의 삶을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었고, 가난 때문에 일찌감치 철이 든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화가의 꿈을 내려놓고 학업에 매진했다.
현실에 눈을 뜬 고등학생 노희정이 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선택한 것은 육군사관학교 진학이었다. 성적은 충분했다. 그런데 신체검사에 불합격, 필기시험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몇 개월을 방황했지만 그는 다시 화가의 꿈으로 돌아설 수 있었다. 육사처럼 돈이 없어도 갈 수 있는 대학을 알아보게 되었고 그때 마침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장학생을 선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과는 수석 입학. 그는 학비를 면제 받아 가난해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잡게됐다.
졸업 후 동아출판사 미술편집사원으로 입사해 생계를 유지하면서 국전에 도전했다. 하지만 두 번의 도전은 모두 낙선이라는 결과로 되돌아왔다. 경제적 안정과 함께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그는 박문초등학교 미술 교사로 취직했다. 그리고 1972년 경기도미술교사전시회를 처음으로 작품활동을 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1회부터 3회까지 연속 입선하며 화가로서의 자신감을 얻게된다. 그때부터 그는 인천미술협회 가입을 시작으로 한국수채화협회, 한일창조미술교류회, 이형회 등 미술단체에 참여하면서 국내외 전시를 열었고 지금까지 25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자연을 그대로 그리고 싶어”
노희정화백의 나이는 73세다. 오랜 세월 동안 그는 인천 곳곳을 그리며 자연을 대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는 성향 때문에 자연을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내 작품 속에서 크게 자리를 잡은 것 같네요.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쭉 자연을 그려 왔더라구요. 신흥동에 살 때는 송도중학교 건물 너머로 보이던 인천 앞바다의 저녁노을이 어린 내 마음에 무한한 색채의 신비로움을 듬뿍 안겨줬고, 중학교 시절엔 항상 자유공원에 앉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최근 작에서도 70세 보단 10대 소녀가 연상된다. 이런 맑고 깨끗한 화풍은 많은 제자들을 그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지금도 그의 작업실에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라회’ 회원 30여 명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찾아온다.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 강원도 춘천에서 찾아오는 제자도 있다. 73세 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왕복 8시간을 투자하며 그림을 배우러 오는 이응숙씨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이렇다.
“인천에 살 때부터 선생님께 그림을 배웠는데, 춘천으로 이사를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도 그림을 배울 곳은 많지만 선생님처럼 맑고 깨끗한 수채화를 그리고 싶거든요. 그러다보니 먼 길도 마다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서울 불광동에 사는 엄기용씨 역시 추운 날씨에도 왕복 5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진다고 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엘리트 미술학도 역시 그의 그림에 반한 모양이다.
“저는 전시회에서 선생님 작품을 보고 연락을 해서 제자가 됐습니다. 서울에서 살았고 서울에서 열린 전시회였지만 마음에 든 그림을 그린 분이 인천에 사시니 와야지요.”
70대, 아직은 전성기
남들은 70대의 나이를 고령이라고 하지만 노희정 화백에게 70대는 아직까지 전성기다. 그는 2009년 고희전을 연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붓을 들다보니 세상에 선보이지 않은 작품들이 아직도 많다.
년에는 ‘작은 그림속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고, 석 달 전에는 ‘꽃을 들여다보다’는 주제로 제2회 아라회 작품전을 마쳤다. 올해 아라회 전시의 주제는 아라뱃길로 정했다. 미리 답사도 다녀오고 작품 구상도 마친 상태다.
그리고 그는 2014년에는 유화 작품들을 모아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그동안 수채화 전문 작가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시도이다.
그의 작품들은 온라인을 통해서도 관람할 수 있다. 제자가 만들고 관리해 주는 홈페이지, ‘노갤러리’(www. rohgallery.co.kr)에는 수채화와 유화는 물론 스케치 작품까지 400여 편을 볼 수 있다.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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