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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큰 아픔이 무엇일까? 하늘이 무너져 버린 슬픔, 바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아픔이 아닐까. 그래서 천붕(天崩)에 비유하며 문장에서 인용을 많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허나 그 보다 더한 아픔이 자식의 죽음을 부모가 지켜보는 일이라고 한다. 피눈물 삼키다가 목이 메여 천근만근 쇳덩이가 억장을 눌러 숨을 쉬기도 어렵다는 참적(慘賊)의 아픔이라고 한다.
1929년 <조선지광>에 발표된 시 <유리 창>은 정지용 시인이 27세 되던 해 자식을 잃고 아비의 원통함이 잘 묘사 절제된 작품이라고 한다.
한국 문학사에 횡,종으로 선을 그으며 길이 남을 사람, 김광균 시인의 모습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1957년 발행 (산호장사 간, 300부 한정)그의 시집 <황혼가>에 실려있는 시를 음미해 보기로 하자. 1947년 5월 서울 남산에서 불의의 총격을 받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시인 배인철(1920-1947)에게 바치는 시로 인천문단사를 논할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다. 배인철 시인을 남구 주안묘지에 묻고 20여일 후에 쓴 이 시가 천붕의 아픔보다 못할까. 참적의 아픔보다 못하다 할까.
주안묘지(朱安墓地) 산비탈에도 밤버레가 우느냐 / 너는 죽어서 그곳에 육신이 슬고 / 나는 살아서 달을 치어다보고 있다. “시를 쓴다는것이 이미 부질 없고나”의 중간부위 김광균은 왜 시제목을 부질없는 시쓰기라고 했을까. 꼭 시를 쓰지 않았으면 친구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으로 해석되지만 절친에 죽마고우를 잃어버린 슬픔이 절정이기에 이런 시를 낳지 않았나 생각된다.
배인철은 부산에서 인천으로 솔가한 배명선의 4남5녀를 3남으로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공립보통학교(창영초교)를 졸업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대학 영문과를 수학(40~42년)하였다. 해방전후 흑인을 주제로한 시를 발표 「노예해안」(47), 「흑인녀」, 「죠, 루이스에게」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 흑인시를 가지고 시시비비 말도 많았지만 일본 유학 시절부터 형성된 ‘민족시인’ ‘반정서주의 모더니스트’였다는 말로 대표되는 배인철은 해방직후 인천중학교에 근무하였고 ‘신문화협회’를 발족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후에 인천문학동맹으로 개칭, 엄흥섭, 송종호등과 교류 하였고 함세덕, 오장환, 서정주등과 동고동락을 하였다. 아직도 건재한 “우련통운”이 신포동에서 영업중이며 초대 사장인 배인복은 그의 형이다. 배인철 시인은 서울에서 활동하며 박인환의 ‘말리서사’ 서점에 오는 모더니스트들과 교류 인천과 멀어졌으나 죽어서 남구 주안묘지에 묻혀 고향을 찾게 되는것이다.
27세의 나이에 요절, 창작기간 2년에 시집 한권 남기지 못한 배인철을 어떻게 우리는 기억해야 할까. 다시 작시한 김광균 시인을 살펴보자.
1914년 개성에서 태어나고, 1930년에 동아일보 「야경차」를 발표하며 등단, 「황혼가」 「와사등」 「기항지」를 출간한 시인 김광균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되는 모더니즘의 이론가, 시인이다. 어쩔 수 없이 고향 남구 주안묘지에 묻으며 슬퍼한 김광균은 지금의 주안7동에 화장장이 있었고 진흥 아파트 윗편이 주안묘지였으니 4살 연하의 친구 배인철을 이별하기 위하여 찾지 않았나 싶다.
승학산 자락에 묻혀 이장된 배인철의 묘 그리고 그를 슬퍼했던 시인 김광균 두사람의 영혼이 남구에 있다.
김학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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