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번듯하게 포장된 길은 아니었어도 우리의 어버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특별한 길은 존재한다.
길이란 누구에게나 맡겨진 자유며 진리 그리고 가야할 이상이 아닐까한다.
우리는 길을 통하여 생명보존에 필요한 것을 얻고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그 위에서 생활하며 그 길을 통해서 또다른 세계로 가기위하여 옷을 벗어놓고 간다.
새로운 것을 찾고 얻기 위하여 가는 길, 우리도 그 곳에서 대지를 만나며 자연을 만나 살고 진다.
한편 길은 구체화된 것도 있지만 마음속의 길 무형의 길도 있다.
어떠한 품사 뒤에 길은 접미어로 쓴다면 그것으로 한 단어의 풀이가 된다는 말이다.
김훈의 소설 <흑산>에서도 그러한 내용을 포괄하는 글이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이 사람살이의 근본이라는 것을 마노리는 길에서 알았다. 사람이 동쪽 마을에서 서쪽마을로 갈 때, 동쪽 마을에서는 간다고 해도 서쪽 마을에서는 온다고 하니, 길 위에서는 갈 왕(往)과 올 래(來)가 같고, 지나가는 것과 다가오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마노리는 고삐를 끌고 걸으면서 알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간다는 것이 마음의 길이 있고 다가오는 것과 지나가는 것이 다르지 않다함은 다 길에서 이루어지며 길을 걸으며 깨우쳤다함은 모든 것의 생각과 철학이 이 길에서 만들어지고 이어졌다 하니 길은 길(道)로서의 기능보다는 머리와 가슴속에 있는 길은 참으로 대단한 수사의 능력을 가진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의 길 이라고 하자. 슬픔의 길 또한 그 마음속에 있다함이 바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만나기 위하여 능행의 길은 정말 슬픔의 길이 아니었을까.
이 길의 모든 이미지는 곧 시인들의 시 속에서 만가지로 표현되어 독자의 가슴에 정표를 만들며 위로의 한 축을 세우고 있다.
나는 어깨동무로 걷고 뛰고 싶다/
고함지르며 또 다른 세상/
가고싶다, 나도 (중략)
필자의 (주안역 가는 길, 2008년 꽃도 말을 했으면 좋겠다. 시집수록) 시집속에 수록된 시다.
왠지 이상할 정도로 역광장을 바라보거나 큰 사거리에 서면 민주화운동의 발상지(?)처럼 가슴이 설레는 것은 왜일까. 정치변천사에서 보듯 우리는 때마다 광장에 집결하며 구호를 외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광장으로 내 달리던 시절이 생각나는 것, 어쩔 수 없는 회상이다.
소리를 않 지르고는 못 살 세상/
나도 한번 광장을 향해내 달려보고 싶다/
단 한번만이라도 /
나는.
1968년 경기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발을 디딘 시인 김학균은 <바람꽃>을 시작으로 <꽃도 말을 했으면 좋겠다.> 까지 5권의 시집을 상재하며 <인천문인협회장을 역임하고 1991년 학산문학을 창간시킨 주역으로 ‘인천문화상’을 수상하며 문화(문학)발전에 기여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인의 눈에 들어오는 광장의 세계는 고충이자 희망이라. 그러므로 소리를 지르며 내달려보고 싶다고 했다. 이는 곧 어깨동무하며 뛰고 싶다는 것은 공동체적 연대의식의 표상이 되고자 하는 모두를 온전히 대접받으며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인 것이다.
‘주안역 가는 길’ 지금은 차량을 이용하여 도달 했지만, 걷기 아니면 버스로 이동하던 때 느꼈던 시골 간이역 스러움은 없고, 소음과 굉음 그리고 사람의 발길이 홍수같은 주안역, 그러나 지금도 그 시절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공자의 제자 증점이 말했다. “산책을 나가 바람을 쐬고 오겠다. 돌이 마음 주는 시냇가에 우리는 닿을 수 있고 새들이 마음 주고픈 하늘에 이른다.”
다 길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주안역 가는 길따라 지금도 광장에 서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학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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