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평면인 도화지 위에 입체적인 현실의 모습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원근법을 사용한 최초의 그림은 15세
기에나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에도 많은 화가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평면에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서양화가 박승천 역시 조각가가 아닌 화가이지만 평면이 아닌 공간에 주목했다.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2차원의 캔버스 화면에 돌출된 입체물을 부착시켜 3차원의 조각같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회화이기도 조각이기도 하다. 2차원적 회화와 3차원적 조각을 공존시킴으로써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박승천은 중구 율목동에서 태어나 40여년 가까이 도화동에 살았다. 도화동 재개발 사업으로 아쉽게 이사를
했지만 여전히 인천에 머물고 있다.
인하부중 시절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화예고와 홍익대라는 미술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한 번도 그림과 떨어져 본 적이 없다. 당시 선화예고까지의 통학 거리는 왕복 5시간.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야만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각이나 조퇴 한 번 없이 3년 개근상을 받았다.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그림에 대한 열정이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박승천의 작품은 그만의 독특함이 엿보인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그의 작품을 골라내기 어렵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확고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것이다. 독특한 화풍 외에 대형 작품이 많다는 것 또한 박 작가의 특징이다.
간혹 작은 작품들도 있지만 대부분 크기가 5m에서 7m정도이며 10m가 넘는 작품도 있다.
크기가 너무 커서 작업실에서는 작품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또 작품의 크기가 너무 크면 판매에도 불리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대형 작품에 몰두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도전이며 자신감을 쌓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40여 년을 한 길만 가다보니 지금은 자신의 작품에 90% 가까이 만족한다. 하지만 이 만족도는 앞으로도
크게 향상되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작가가 스스로 만족하게 되면 다음 작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에게 있어 작품 활동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인 것이다.

공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기 때문일까? 그의 취미는 가구 만들기다. 처음엔 액자 틀을 직접 만들기 위해
목공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작품에 어울리는 틀을 만드는 것은 물론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책상이나
책꽂이를 만들 정도로 실력자가 됐다. 그의 목공 실력을 알아 본 화가 친구들의 주문 요청도 끊이지 않는단다.
박승천은 인천 출신 화가로서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아트 프라이스’인천지역 수석 편집장
으로 활동하며 인천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전시 등을 전국에 소개하는 일도 맡고 있다.
부산, 제주는 물론 일본, 중국, 터기 등에서 펼쳐지는 국제전에도 활발히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것으로 화가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1999년 첫 개인전 시작으로 현재 21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3월 30일까지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윈도우
갤러리를 찾으면 된다.

,
공공누리 제4유형 출처표시 및 상업적 이용금지,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가능

* 본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만족스러우신가요? 평가에 참여하시면 누리집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닫기
추천 기사
  1. 제36회 미추홀구 구민의 날 기념
  2. 인천e음 캐시백 상향, 인천시 추가지원금 지급 등
  3. [어린이날과 스승의날 맞이] 학익초등학교 3학년 인터뷰
  4. (인물소개 이벤트 선정 사연) 표현하지 못했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5. 수봉공원 스카이워크 개장
  • 구정종합
  • 의정소식
  • 복지/건강/생활
  • 문화/교육/인물
  • 칼럼/기고
  • PDF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