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흐르고 있다. 오늘도 내일이 되도 사라지지 않고 흐른다. 그러나 흐르며 차곡차곡 쌓여가며 만들 수 없는 오늘이다. 그리고 우리를 오늘로부터 반성케 하며 기억의 창고에서 생성되어 진다. 우리에게 인문학, 그 중에서도 고전은 그렇다. 특히 인문학 속의 문학은시대상을 읽어내려 가며 잘 묘사 먼 훗날 우리는 징표로 삼으며 삶을 반추하는 것이다.
문학산, 또다시 문학산의 설명이 필요 없다 할, 이 산은 우리 인천의 진산으로 인천을 탄생케한 모태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줄기를 가지고 있다.
온조와 비류의 백제 그리고 그 왕조 멸망의 그늘까지 한 축을 담당할 문학산은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에 영원할 것이다.
<문학산 정가>라 했다. 문학산에 정이 넘치는 노래일까, 그 산에 정이 꽉 찬 것일까. 시인 강순덕은 이렇게 노래했다.
‘벗이여/ 문학산으로 오라/ 진홍빛 노을/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해질녘이 제 격일세(중략)
옛 친구와 함께라면/좋으리라’고 1연과 2연을 노래했다. 3연과 4연에서는 ‘번뇌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서해낙조에 풀어보세/ 끄덕끄덕 미소 짓는/ 얼굴과 마주하고 싶네’
친구와 함께하는 인생사를 이 산중에서 하고 싶은 화자는 문학산 소나무처럼 살자고 6연에서 결구를 내는 정가로 읊었다. 그러나 우리는 5연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학이 노닐던 학산서원을 지나/ 삼호연 고개에 이르면/ 세 번 이름을 부르고 이별한다던/ 가슴 아푼 사연을 이야기 하세’ 하고 이별의 사연도 알며 소나무처럼 살자고 친구를 해질녘에 불렀던<문학산 정가>는 한 여인의 여인다운 시상에 다가왔지만 많은 아품을 간직하고 있는 인천의 역사를 대입하고 싶은 시인의 노력이 대단하다 아니할 수가 없다.
문학으로 역사를 말하고 시 한편 속에서 인천의 변천사를 담고 싶은 시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떠 올리는 인물이 있다. 18세기 명사들의 인물평을 썼던 ‘일몽고’의 저자이며 문필가 학자였던 이규상(李奎象. 1727~1799)이다.
문학산을 넘어 삼호연을 지나 능허대에 이르는 길 따라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했지만 <문학산성> 이라는 시조에선 망국의 슬픔을 노래했다. 1765년 그의 나이 38세에는 인천을 사랑하여 내 논 ‘인주요’ 9편과 ‘속 인주요’ 9편 도합 18편은 인천의 삶과 무속 그리고 풍류 까지도 면밀 고찰한 지침서이다.
영조 41년부터 44년에 걸쳐 3년동안 인천부사(263대)를 지낸 아버지 이사질의 아들로 인천에 머물며 진 글들이다.
강순덕 시인의 글<문학산 정가>가 가지는 것도 삶 속에서의 문학산을 빗대어 노래했지만 이규상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은 <동운아여손. 同韻兒與孫. 아들 손자와 함께>같은 섬세한 시어들로 짜여진 글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느날 아들 손자와 함께 집에서 본 뜰 안의 자연이 만들어 내는 기이한 조화를 보며 감탄, 한 낮의 일상을 깨트리는 작은 소란에 시인의 마음이 설레는 것, 그것이 강순덕 시인의 마음 속에도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964년생으로 이제 막 지천명에 도달한 여류로 부단히(혼자, 숨어서) 시 창작에 열중한 사람,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강 시인은 2012년 <문학의 봄> 문예지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반열에 들어선 시인이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예술지원과장이다.
두가지 일을 하며 일군 또하나의 별칭 ‘시인’ 바라옵건데 인천을 주제로한 시 많이 쓰길 바라며 건필하기를……
※ 본 <문학산 정가>는 인천예총이 발행하는 “예술인천‘에서 만날 수 있음을 알려 드림니다.
김학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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