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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의 자랑이라면 수 없이 많다는 것은 인천인이면 다 알터이지만 진짜 자랑이라면 문학산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소래산이라고 옛날 아주 옛날 진산이라고 말했겠지만 행정구역으로 보면 시흥시 소재의 산이니 당연히 문학산이며 남구의 정신적 랜드마크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문학산 주봉을 위시하여 북쪽으로 연경산, 노적산 그리고 남으로는 갈마산과 수리봉으로 널리 퍼져있어, 미추홀 2000년의 세월동안 인천을 품고 있는 산이 아닌가.
현 문학초교(옛 도호부)의 남쪽에 있어서 남산으로 불리기도 했고 축성을 쌓아논 산성이 있어 성산(城山)이라고 칭하기도 했고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기도하여 학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문학산이라고 했을까, 1708년 이조 숙종 34년 ‘학산서원’ 이 만들어 졌는데 이 서원을 따 학산에 서원이 바로 글을 연마하는 곳이기에 글(文)자를 붙혀 문학산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에 가까운 말이니 믿어도 좋을 성 싶다.
문학산에 관한 시(詩)는 현대에 들어서 많다. 그 대표적 실례라면 한상억 시인의 <인천찬가> 연작시에 문학산이 있는 것 처럼 많은 사람이 노래했다.
그러나 오늘은 근 현대보다도 더 오랜 시절 조선시대의 문인이 쓴 <문학산성> 이라는 시를 소개하며 남구의 우월성을 펼쳐볼까 한다.
이규상은 조선시대에 태어난 (1727~1799) 문인으로 그의 부친이 인천부사로 부임할 당시엔 식솔로 와서 지은 한시로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문학산으로 오르는 좁은 길이 아득하여라
일찍이 미추국을 세울 때 의지했던 곳이라네.
지나치는 비는 면면이 원앙이 새겨진 기와에 떨어지고,
이른 봄 망제의 혼이 깃든 철쭉은 구석에 피었다네.
오래된 우물에 연기가 솟아오름은 비류의 스러진 넋이려나,
주인 없는 사당에 모여 갈가마귀에게 제사를 올리네.
산성을 허물어 제왕의 기운이 다시 일 것을 억눌러 막았는데
무너져 흩어진 너른 산성, 그 비늘같은 석축들이 꾸짖는 도다. <문학산성>

 구구절절이 비운이 괘여있는 시로서 돌아드니 다 아쉬움이 남아 후세의 사람들에게 교훈을 안기는 글이다.
 비운의 왕 비류의 한을 산성에 비유함이 잘 묘사된 한시로 시사함이 크다.
 옛 명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이 일대가 조선의 쇄국정책에 빗겨 갔다면  ‘원 인천’ 지역으로 몰락을 면 하였을텐데 아쉽기 그지 없다. 허나 문학산에서 지척으로 구월동 시대가 시청사와함께 열리며 문학경기장이 들어서며 옛 명성을 되찾아오게 되었다. 아쉽다면 문학산 정상은 아직도 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에 아직도 군 부대가 있고 산이 산으로서의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 와중에도 의연히 인천을 지켜온 진산 문학산은 온전히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멀리 보이는 문학산은 칭얼대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우리를 보고만 있다. 우리가 바라다 보는 산, 생각을 바꾸어 보자 우리가 보는것이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고.
 준엄한 꾸짖음으로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년이면 미추홀 2000년, 정명 600주년의 의미로 닦아올 2013년이니 말이다.
 

김학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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