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한 때 방위라는 군역은 뭇 남성들의 멸시와 질시를 독점했다. 실은 현역병보다 훨씬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출퇴근제이고 동사무소 같은 생활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탓에 소위 ‘만고땡’ 거저먹는 군대생활로 비친 탓이다. 방위를 소재로 한 우스갯소리가 넘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에 대한 반발인지 기강 해이에 대한 경계가 심했다. 이 작품 ‘방령전’은 그런 시절, 경찰서에서 근무를 하는 방위병들의 유쾌한 이야기이다.
전라도 어느 섬마을. 협조적이고 순진한 성격인 경모에 비해, 반골 정신 투철한 진우는, ‘그저 개기면 중대장도 지서장도 순경도 아예 포기해 버린 위대한 방위, 즉 방령이 된다’ 라는 지론하에, 상관들의 근무 태도를 살피기 시작한다. 어렵지 않았다. 근무중 음주, 티켓 다방 배달, 구제역에 걸린 소 도축 등, 소위 ‘윗분’ 들의 비리가 줄줄이 걸렸고 그걸 미끼로 진우는 위대한 ‘방령’의 길을 치닫기 시작한다. 방령이 무엇인가? 중위, 대위 위에 소령, 중령으로 넘어가기 전에 있다는 자칭 영관급이다. 그 기세를 몰아 진우는 다방 레지 정양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상관들을 몽땅 쫓아내버리고 자신의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공연의 재미는 신참 방위병이라는 최하층 서민이 순경, 지서장, 대대장이라는 기득 권력층을 골탕먹이는, 소위 홍길동적 활약에 있을 것이다. 유난히 서민의 반란에 박수를 보내는 한국민의 정서상, 권력층의 비리를 캐내 협박과 회유와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끝내 사랑을 쟁취해내는 진우의 모습은 그야말로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며 뛰어드는 이몽룡이다. 남자들의 로망이고 전형적인 고전 히어로이다. 주목할 것은 진우 자신도 처음에는 만고땡 군생활을 위한 작전이었지만 이것이 점차 사회정의라는 소명감을 띠어간다는 점이다. 그 계기가 된 다방 레지 정양은 5·18때 광주에서 행방불명이 된 남자를 찾아 헤매는 여인으로 묘사돼 있다.
작품 내내 진우에게 당하기만 하는 상사들의 모습은 가여울 정도다. 집합 한번이면 팍팍 돌아가던 기존의 시스템이 웬 삐딱한 망둥이 한 마리 때문에 홀딱 뒤집혔으니 여간 황당한 게 아니다. 보안대라는 말에 찔끔해서 찌그러드는 걸 보면 그들도 그리 썩 나은 입장도 아니다. 그저 기존 체제에 적당히 의탁하고 살아온 또 다른 소시민일 뿐. 근무중에 차배달을 시키고, 병으로 죽은 소를 밀도살해 고기판을 벌이는 일쯤 그저 흔한 생활의 일부일 뿐이건만, 진우는 공직자들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한다며 주먹을 불끈 쥔다. 마음에 둔 여자 앞에서 하는 몸짓이라는 점이 또 무거워질 수 있는 이 작품을 가볍게 만드는 부분이다. 어쨌든 혁명은 시작되었고 매서운 시선 앞에 다방 커피 한잔 먹기 힘들어진 윗분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우의 추방을 꿈꾼다. 방령 등극인 셈이다.
서울문화예술대학 연극예술학과 곽노흥 교수의 희곡을, 극단 연극을만드는사람들(연만사)의 젊은 배우들이 창단 2년을 기념해 뜨겁게 준비해 올렸다. 우리의 형님, 삼촌, 아버지의 청춘이 녹아있는 상쾌하고 통쾌한 코미디, 방령전.
방위병은 사라졌지만 추억은 영원하다. 더 많은 전설을 관극 후 막걸리 한잔과 함께 들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문광 문학시어터 극장장
|
- 공연일시 : 2013년 8월 17일(토)~18일(일) |
- 이전글 클래식이 흐르는 가족음악회
- 다음글 풍수 이야기 ① 비룡(飛龍)하는 남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