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끌리는 건 다시 찾기 마련이다. 가족과 친지가 모이는 것은 물보다 진한 ‘피붙이의 끌림’ 때문일 것이고, 맛집이 있다면 그것 또한 발길을 쉬이 끌게 만드는 ‘맛의 끌림’ 때문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피붙이가 내 옆에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식당도 언제 없어질지 몰라, 한 자리에 계속해서 머물기도 힘들다는 것일 게다.
이렇듯 끌리는데 있어서도 우리와 함께 오래 지내왔고 앞으로도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내구성을 찾기란 게 사실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세대별로 참여할 수 있고 아우를 수 있는 도서관이나 부대시설로써 문화, 공연시설 등은 우리가 주변에서 접하기에 부족해서 그렇지 만들어 놓고 잘 운용하면 활용가치가 꽤 높고 오래도록 지속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단순히 시설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문화적 상징 시설들이 가져다주는 끌림은 무엇 때문일까? 현대를 사는 피폐한 우리의 정신이 무언가에 그만큼부재와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만의 전유물 같은 도서관이 아닌 다양한 세대와 직종과 분야가 어울릴 수 있는 시스템의 도서관으로 성장, 발전시켜 나가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고, 이야기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어가고 싶은 바람들, 일종의 정신적 요소의 끌림이다.‘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정신의 추구냐’하면 곤란하다. 내가 사는 지역사회에 양질의 정신적 영양소는 반드시 필요하고 충족되어야 마땅하다.
한 포기 풀조차도 해로운 것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영양소가 조금 모자라다는 것만으로도 시들어 말라 죽는 게 더 많거늘 나와 이웃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의 창출을 ‘소 닭 보듯’ 누군가의 숙제로만 남겨두자는 것은, 눈을 떠도 코 베어가는 냉엄한 현실속에서 정신의 결핍에 순응하고 두 눈을 감아 버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계속 부족해지기만 하는 것이다. 부족한 뭔가를 채워 넣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부족한 다른 무언가를 계속해서 채워 넣어야만 한다. 그렇게 나와 이웃이 함께 선 순환할 수 있는 공간의 창출과 참여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정서적 트렌드와 맥이 닿아있다고 본다. 시작이 처음서부터 대단한 것은 아닐 수 있다. 도서관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철강왕 카네기가 그 많은 돈을 도서관 짓는데 쏟아 부은 이유도 발단이 되는 시작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카네기의 어린시절, 코로넬 앤더슨이라는 은퇴한 상인이 자기가 소장하고 있던 400여권의 책을 모아 일하는 소년들을 위해 도서관을 연 것이 작은 시발점이 되었고, 훗날 카네기는 ‘코로넬은 그 작은 도서관을 통해 지식의 빛이 흐르는 창을 열어주었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카네기는 미 전국의 약 1,400개 지역사회에 도서관을 짓도록 희사했고, 뉴질랜드의 23개 도서관과 남아공화국의 13개의 도서관, 또 피지의 1개 도서관 등을 포함해 전세계에 거의 3,000여개의 도서관 건립에 전 재산의 90%를 환원했다. 미국이 강해질 수 있었던 근원과 밑바탕에는 이렇듯 방대한 규모의 교육과 학문적 기틀이 그 궤적을 같이했다고 볼 수 있다.소소하게 시작된 코로넬의 생각이 카네기의 정신을 끌리게 했고 그 끌림이 실로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현재 많은 이들의 참여와 노력으로 남구에는 12개의 구립도서관과 2개의 시립도서관(수봉도서관, 주안도서관)이 있지만 좀더 보완하고 새로운 시설물을 확충해야 한다. 동네에 있는 조그만 도서관이 만들어준 카네기나 빌게이츠 같은 인물이우리가 거해있는 이 지역에서 생겨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과 불합리한 구조를 ‘참고 이겨내라’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일 수 있으나, 정책을 발의하는 정치인이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좀 더 나은 환경과 합리적인 구조의 개선이 뒷받침되는 기안과 투자유치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배움이 있고, 휴식과 유익을 줄 수 있는 상징의 공간으로서 ‘도서관의 건립’은우리가 사는 지역의 가치를 더하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치가 만들어내는 지역사회의 순기능과 다수의 끌림들을 기대해본다.
미추홀구 나이스미추
인기검색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