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성이 아름답다(3) 인천국제교류센터 김 혜 경 씨
타고난 일벌레… ‘똑순이 엄마’
대학·유학때 오히려 돈벌며 공부
3살 딸 외할머니에 맡겨 늘 미안
우리나라에서 워킹 맘(Working mom)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도 만만히 봐서도 안된다. 이런 슈퍼우먼들의 틈에 당당하게 동북아의 허브, 인천의 국제화에 앞장서는 사람, 인천 국제교류센터의 김혜경(36) 전문위원이 있다.
국토 연구원의 해외 업무와 한국산업인력공단 국제협력부에서의 탄탄한 경력을 바탕으로 2005년 10월 인천 국제교류센터 개소에 합류한 김혜경 씨는 인천시민의 국제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강연을 진행 중이다.
그녀는 학창시절부터 똑소리나기로 유명했다. 20대가 되면서부터 용돈을 받아 본적이 없을 뿐더러 대학시절 내내 장학금은 물론, 과외로 부수입도 짭짤히(?) 올렸다. 그 이력은 유학시절로까지 이어져 캐나다 타국 땅에서도 과외를 해가며 공부했다. 남들은 비싼 외화 써가며 유학 간다는데 오히려 외화를 벌며 공부를 했을 정도니 타고난 똑순이다.
일을 안 하면 몸이 구석구석 쑤시고 아프다며 일벌레를 자청하는 그도 마음 한구석에 늘 걸리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3살난 딸아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가 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는 그녀는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출근할 때면 ‘내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직장생활을 해야 하나'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아이를 봐줄만한 할머니라도 있으니 축복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하지만 늘그막에 손녀 챙기느라 외출 한번 마음껏 못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또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씩씩하게 출근을 하는 건 처음 국제화관련 일을 시작했을 때의 다짐과 사명감 때문이다. 국토개발원 근무시절 ‘개발도상국 공무원 도시계획 연수'를 맡아 방글라데시,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에서 온 20여명의 사람들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꼼꼼히 챙기기 위해 밤낮없이 뛰었다.
얼마 후 고국으로 돌아간 리비아 연수단이 보내온 뜻밖의 선물… 자신의 이름 세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항아리에는 그 동안의 고마움과 감사의 뜻이 가득 담겨있었다. 국가와 이념을 초월해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한다면 짧은 시간에도 마음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만나고 우리나라를 알리며 그 속에서 일을 찾아가는 직업인만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그 교훈은 지금의 김혜경 씨를 있게 한 소중한 기억이다.
그녀는 오늘도 퇴근을 하면 아이를 데리러가고 후다닥 저녁을 준비하고 집안정리를 하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즐겁게 잠자리에 들 것이다. 10년 후 딸아이와 함께 떠날 배낭여행의 순간을 꿈꾸며 말이다.
타고난 일벌레… ‘똑순이 엄마’
대학·유학때 오히려 돈벌며 공부
3살 딸 외할머니에 맡겨 늘 미안
우리나라에서 워킹 맘(Working mom)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도 만만히 봐서도 안된다. 이런 슈퍼우먼들의 틈에 당당하게 동북아의 허브, 인천의 국제화에 앞장서는 사람, 인천 국제교류센터의 김혜경(36) 전문위원이 있다.
국토 연구원의 해외 업무와 한국산업인력공단 국제협력부에서의 탄탄한 경력을 바탕으로 2005년 10월 인천 국제교류센터 개소에 합류한 김혜경 씨는 인천시민의 국제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강연을 진행 중이다.
그녀는 학창시절부터 똑소리나기로 유명했다. 20대가 되면서부터 용돈을 받아 본적이 없을 뿐더러 대학시절 내내 장학금은 물론, 과외로 부수입도 짭짤히(?) 올렸다. 그 이력은 유학시절로까지 이어져 캐나다 타국 땅에서도 과외를 해가며 공부했다. 남들은 비싼 외화 써가며 유학 간다는데 오히려 외화를 벌며 공부를 했을 정도니 타고난 똑순이다.
일을 안 하면 몸이 구석구석 쑤시고 아프다며 일벌레를 자청하는 그도 마음 한구석에 늘 걸리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3살난 딸아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가 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는 그녀는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출근할 때면 ‘내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직장생활을 해야 하나'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아이를 봐줄만한 할머니라도 있으니 축복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하지만 늘그막에 손녀 챙기느라 외출 한번 마음껏 못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또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씩씩하게 출근을 하는 건 처음 국제화관련 일을 시작했을 때의 다짐과 사명감 때문이다. 국토개발원 근무시절 ‘개발도상국 공무원 도시계획 연수'를 맡아 방글라데시,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에서 온 20여명의 사람들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꼼꼼히 챙기기 위해 밤낮없이 뛰었다.
얼마 후 고국으로 돌아간 리비아 연수단이 보내온 뜻밖의 선물… 자신의 이름 세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항아리에는 그 동안의 고마움과 감사의 뜻이 가득 담겨있었다. 국가와 이념을 초월해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한다면 짧은 시간에도 마음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만나고 우리나라를 알리며 그 속에서 일을 찾아가는 직업인만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그 교훈은 지금의 김혜경 씨를 있게 한 소중한 기억이다.
그녀는 오늘도 퇴근을 하면 아이를 데리러가고 후다닥 저녁을 준비하고 집안정리를 하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즐겁게 잠자리에 들 것이다. 10년 후 딸아이와 함께 떠날 배낭여행의 순간을 꿈꾸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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