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다리 하나
인천서 돛단배 타고 서산까지 피난길
얹혀살던 외갓집서 눈칫밥 먹던 기억
6. 25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 때는 교통수단도 별로 없어서 만석동 굉이부리말에서 신흥학교까지 걸어서 다녔는데 친구도 없이 좁고 지루한 길을 혼자 집으로 걸어올 때는 온갖 상상을 하며 혼자 중얼중얼 이야기 한편을 만들면서 오곤 했다.
그날도 햇볕이 쨍쨍하여 ‘내일도 덥겠구나'하고 밖을 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따리를 이고 가는 것이 보였다. 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짐을 든 사람들 물결이 월미도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조금 후 어머니께서 들어오시더니 전쟁이 났다며 피난을 가야하니 물건을 챙기라고 하시기에 책보따리를 허리에 동여매고 나섰더니 “야! 너는 그 책 먹고 살래. 양은솥이라도 하나 갖고 와." 어머니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래서 양은솥 하나 머리에 이고 책보따리를 허리에 맨 채 어머니를 따라 피난길에 나섰다.
월미부두를 지나 어머니 고향분의 돛단배(일명 풍선)를 타고 5일 만에 충남 서산에 닿았다. 삼길포라는 어촌이었는데 우리가 배에서 내리자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해 전쟁이 났다고 하니 인천 쪽에서 천둥소리가 나 쓸데없이 그 곳에만 비가 오는 줄 알았단다.(그 해는 몹시 가물었다.)
그렇게 외갓집에서의 피난살이가 시작되었다. 가난한 농촌에서 그것도 보릿고개에 뜻하지 않은 객식구가 다섯이나 생겼으니 외숙모는 어처구니없고 외할머니는 몹시 난처하게 됐다. 식사가 시작되면 외할머니께서는 나와 내 동생들 밥 그릇 위에 황바리 게(서산 앞바다 갯벌에서 여름철에 많이 잡히는 엄지 발 하나가 빨갛고 큰 게이다. 지금은 대호 방조제 공사로 거의 없다.) 엄지발 하나를 뚝 떼어 얹어 놓으시며 “자! 이걸로 밥 다 먹어.”하신다. 밥도 적은데 반찬이라도 많이 먹어야 할 마당에 간장에 절인 게 다리 하나로 어떻게 밥을 다 먹으라는 건지. 우리 남매들은 서로 쳐다보다가 요리조리 게 다리 하나를 돌려가며 밥을 먹었다. 뭐라 했다가는 외할머니의 꿀밤이 정수리에 박힌다. 외할머니 장지에는 은쌍가락지가 끼워져 있어 한 대 맞았다하면 별이 반짝한다. 우리 둘째 남동생은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누나 언제 집에 가?"한다. 결국 게 다리 하나로 시작된 반찬이 내가 갯벌에 나가 게를 잡아옴으로써 한 마리로 승격됐다.
그 모진 6월도 반세기가 훌쩍 넘게 지나갔다. 이제는 입맛을 찾아다니는 풍요로운 세상이 됐다. 아마 젊은이나 어린이들에게 이런 얘기 하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할 게다. 지금도 나는 시장에 가서 농게만 보아도 앞가르마에 야물딱지게 쪽지고 텃밭에서 배추벌레를 잡던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인천서 돛단배 타고 서산까지 피난길
얹혀살던 외갓집서 눈칫밥 먹던 기억
6. 25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 때는 교통수단도 별로 없어서 만석동 굉이부리말에서 신흥학교까지 걸어서 다녔는데 친구도 없이 좁고 지루한 길을 혼자 집으로 걸어올 때는 온갖 상상을 하며 혼자 중얼중얼 이야기 한편을 만들면서 오곤 했다.
그날도 햇볕이 쨍쨍하여 ‘내일도 덥겠구나'하고 밖을 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따리를 이고 가는 것이 보였다. 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짐을 든 사람들 물결이 월미도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조금 후 어머니께서 들어오시더니 전쟁이 났다며 피난을 가야하니 물건을 챙기라고 하시기에 책보따리를 허리에 동여매고 나섰더니 “야! 너는 그 책 먹고 살래. 양은솥이라도 하나 갖고 와." 어머니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래서 양은솥 하나 머리에 이고 책보따리를 허리에 맨 채 어머니를 따라 피난길에 나섰다.
월미부두를 지나 어머니 고향분의 돛단배(일명 풍선)를 타고 5일 만에 충남 서산에 닿았다. 삼길포라는 어촌이었는데 우리가 배에서 내리자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해 전쟁이 났다고 하니 인천 쪽에서 천둥소리가 나 쓸데없이 그 곳에만 비가 오는 줄 알았단다.(그 해는 몹시 가물었다.)
그렇게 외갓집에서의 피난살이가 시작되었다. 가난한 농촌에서 그것도 보릿고개에 뜻하지 않은 객식구가 다섯이나 생겼으니 외숙모는 어처구니없고 외할머니는 몹시 난처하게 됐다. 식사가 시작되면 외할머니께서는 나와 내 동생들 밥 그릇 위에 황바리 게(서산 앞바다 갯벌에서 여름철에 많이 잡히는 엄지 발 하나가 빨갛고 큰 게이다. 지금은 대호 방조제 공사로 거의 없다.) 엄지발 하나를 뚝 떼어 얹어 놓으시며 “자! 이걸로 밥 다 먹어.”하신다. 밥도 적은데 반찬이라도 많이 먹어야 할 마당에 간장에 절인 게 다리 하나로 어떻게 밥을 다 먹으라는 건지. 우리 남매들은 서로 쳐다보다가 요리조리 게 다리 하나를 돌려가며 밥을 먹었다. 뭐라 했다가는 외할머니의 꿀밤이 정수리에 박힌다. 외할머니 장지에는 은쌍가락지가 끼워져 있어 한 대 맞았다하면 별이 반짝한다. 우리 둘째 남동생은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누나 언제 집에 가?"한다. 결국 게 다리 하나로 시작된 반찬이 내가 갯벌에 나가 게를 잡아옴으로써 한 마리로 승격됐다.
그 모진 6월도 반세기가 훌쩍 넘게 지나갔다. 이제는 입맛을 찾아다니는 풍요로운 세상이 됐다. 아마 젊은이나 어린이들에게 이런 얘기 하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할 게다. 지금도 나는 시장에 가서 농게만 보아도 앞가르마에 야물딱지게 쪽지고 텃밭에서 배추벌레를 잡던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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