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나이를 훌쩍 넘기면서, 또 다른 세월의 거듭남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새 풋풋한 단발머리 여고생은 숨가쁜 세월로 인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선택한 양지와 음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여년 전 싱그러운 봄날!
바람불어 좋은 날∼ 벚꽃 잎들이 꽃눈이 되어 후두둑 날릴 때 그 아름다움에 도취돼 살며시 두 눈감고 명상에 잠길 때가 생각난다.
점심시간에 단짝 친구들과 학교 교정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딸기코 선생님과 라면 짱 여선생님의 러브스토리로 이야기꽃을 피울 때”가 그립다.
학교 방송 반 친구들과 시간 시간마다 나뉘어 지는 방송 멘트로 머리 조아려 고민하고 그 시절 여고생들이 좋아했던 비틀즈의 Yesterday 노래가 귀가에 맴돈다.
하지만 이제 숱한 세월로 인한 세상의 이기심으로 많은 세대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예전 우리 때의 순박했던 선생님들을 향한 존경심은 사라지고, ' 선생님들의 권위가 부재중'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어울린다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가정에서도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듯이,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와의 신뢰성 회복에도 문제이고, 또 이기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선생님들의 권위는 강화되어야 한다.
옛말에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말'이 이럴 때 비유가 되지 않을까?
평소에 내 아이 기죽이지 않으려고 무엇이든지 “네가 잘했다, 네 생각이 맞아”하며 아이 편을 들었던 부모가 있었다.
언젠가는 학교 선생님이 그 아이를 벌을 세우고 매를 때렸을 때도 곧바로 학교에 찾아가 “왜 내 아이를 때리느냐”고 따진 적도 있다.]
늘 자기 자식만큼은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키우고 싶었던 부모의 지나친 욕심으로 그 아이는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의 잠재된 의식 속에서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불신감으로 가득 찼고, 겉모습은 당당해 보였지만, 실제 본 모습은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부모는 그 아이가 고학년이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땐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난 그 사건을 매스컴으로 통해 들으면서, 우리 아이들은 학교 교육과 가정교육을 잘 병합하여, 내아이들 `선생님의 권위가 부재중'이 아니길 바라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선생님^부모^학생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로 부합되기를 소망했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늘 학생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노심초사 수고하는 참된 선생님들을 위해 가정에서 먼저 선생님들의 권위를 높여 주자.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아이들이 더욱 더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의 깊은 사랑의 뜻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 어떤 선물보다 선생님들에겐 더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아울러 그 따뜻한 마음으로, 스쳐 지나간 옛 선생님들에게도 가끔 선생님들 노고에 감사하는 답례의 편지를 보내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
선생님의 꾸지람 속엔 부모님과 같은 깊은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이현숙 기자>leewoo45@namgu.incheon.kr
어느새 풋풋한 단발머리 여고생은 숨가쁜 세월로 인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선택한 양지와 음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여년 전 싱그러운 봄날!
바람불어 좋은 날∼ 벚꽃 잎들이 꽃눈이 되어 후두둑 날릴 때 그 아름다움에 도취돼 살며시 두 눈감고 명상에 잠길 때가 생각난다.
점심시간에 단짝 친구들과 학교 교정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딸기코 선생님과 라면 짱 여선생님의 러브스토리로 이야기꽃을 피울 때”가 그립다.
학교 방송 반 친구들과 시간 시간마다 나뉘어 지는 방송 멘트로 머리 조아려 고민하고 그 시절 여고생들이 좋아했던 비틀즈의 Yesterday 노래가 귀가에 맴돈다.
하지만 이제 숱한 세월로 인한 세상의 이기심으로 많은 세대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예전 우리 때의 순박했던 선생님들을 향한 존경심은 사라지고, ' 선생님들의 권위가 부재중'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어울린다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가정에서도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듯이,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와의 신뢰성 회복에도 문제이고, 또 이기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선생님들의 권위는 강화되어야 한다.
옛말에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말'이 이럴 때 비유가 되지 않을까?
평소에 내 아이 기죽이지 않으려고 무엇이든지 “네가 잘했다, 네 생각이 맞아”하며 아이 편을 들었던 부모가 있었다.
언젠가는 학교 선생님이 그 아이를 벌을 세우고 매를 때렸을 때도 곧바로 학교에 찾아가 “왜 내 아이를 때리느냐”고 따진 적도 있다.]
늘 자기 자식만큼은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키우고 싶었던 부모의 지나친 욕심으로 그 아이는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의 잠재된 의식 속에서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불신감으로 가득 찼고, 겉모습은 당당해 보였지만, 실제 본 모습은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부모는 그 아이가 고학년이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땐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난 그 사건을 매스컴으로 통해 들으면서, 우리 아이들은 학교 교육과 가정교육을 잘 병합하여, 내아이들 `선생님의 권위가 부재중'이 아니길 바라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선생님^부모^학생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로 부합되기를 소망했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늘 학생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노심초사 수고하는 참된 선생님들을 위해 가정에서 먼저 선생님들의 권위를 높여 주자.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아이들이 더욱 더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의 깊은 사랑의 뜻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 어떤 선물보다 선생님들에겐 더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아울러 그 따뜻한 마음으로, 스쳐 지나간 옛 선생님들에게도 가끔 선생님들 노고에 감사하는 답례의 편지를 보내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
선생님의 꾸지람 속엔 부모님과 같은 깊은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이현숙 기자>leewoo45@namgu.incheo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