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건강/생활

 어느 책에선가 부부는 전생의 원수가 서로 만나서 그 업을 갚아가기 위해 만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내 나이 스물 한살, 그 사람 나이 스물 일곱에 처음 만났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채 못 느낀 채 순수했던 내 모습에 이끌렸던 그의 청혼을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누구나 그렇듯이 신혼의 단꿈은 모든 악조건들을 덮어버릴 정도로 마냥 좋았다.
 보증금도 없는 월세 방에서 부엌조차 갖춰지지 못하고 방문을 열면 연탄 아궁이가 오른쪽에 있었던, 지금 말하면 쪽방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그런 집에서 우리의 보금자리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처음 시댁에 갔을 때 무척 환대해 주셨던 시부모님과는 달리 친정아버지께서는 절하는 사위를 외면한 채 뒤돌아 앉으셨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노라고, 귀한 따님 키워서 주시는 것만도 감사하다고 애원하며 그야말로 힘겹게 결혼을 한 것이다.
 맞벌이 부부로 남편은 총각 때부터 다니던 직장에, 나는 집에서 가까운 학원의 경리로 일을 했다.
 친정어머니도 친구들도 처음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눈물들을 글썽였다.
 그때는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지독할 정도로 금전에 대해 집착하는 남편의 모습에 참 힘들었다.
 봉급을 타게 되면 한달 차비와 극히 최소한의 생활비만 빼고는 모두 저금하는 것이 오랜 시간 반복되었다. 견디기 힘들어 친정어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약간의 용돈을 다달이 주셨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생활비보다 풍족히 살림을 하는 것을 이상히 여긴 남편의 추궁에 사실대로 고백했고, 노발대발하면서 다시는 한푼도 받지 말라고 했다.
 조금씩 이사를 늘려하는 재미도 힘든 줄 모르고 좋았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림만 하면서 어느새 소극적으로 점점 변해 가는 내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
 학창시절 밝고 명랑해서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사랑 받았던 내 모습은 점차 우울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 감을 느끼고, 반대로 별명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던 남편은 점점 쾌활하고 자신감 넘치는 남자로 변해갔다.
 지금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의례껏 마이크 잡고 사회를 보아야 할 정도로 좋은 성격이 되었다.
 책만이 유일한 내 즐거움이었고 삶의 희망이었다.
 그러면서 결혼 6년 만에 작은 집을 드디어 마련했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미루어 왔던 공부도 시작했다.
 철부지 아내를 위해 고생마다 않고 열심히 뒷바라지 해주어서 대학도 졸업하고 여러 가지 자격증도 취득했다. 함께 살아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처음으로 내게 고백을 했다.
 “내가 왜 그렇게 지독하게 살았는지 알아? 무슨 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장인어른의 뒤돌아 앉으셨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거야. 네 놈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모습이 비추어져 결코 포기할 수 없었지.”
 눈물이 핑 돌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친정아버지는 중학교에서 23년을 넘게 근무하신 독실한 크리스챤이셨던 까닭에 믿지 않는 사위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히 반대하셨고 무엇보다 남편의 외형에서 풍기는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마음에 드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정해 주셨고 사위를 누구보다 좋아하셨다.
 작년에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하라고 해서 1년 가까이 정말 힘겹게 했고 드디어 자격증도 취득했다.
 경험 없이 부동산 사무실을 차렸고, 여러 가지로 어려움도 많다.
 세상 살아감이 역경 아님이 없다. 좁은 마음에 엮어 가는 생의 파편들이 미움의 불길 아님이 없다. 매일매일 지나는 삶이 상처투성이인 듯 싶기도 하고…
 이십여 년을 살면서 우여곡절도 참 많았고 행복했던 일들도 참 많았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삶이 우리 부부에게 주어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업을 갚아 가는 심정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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