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건강/생활

 이제 완연한 봄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새싹이 파릇하다거나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다거나 하는 봄 풍경보다는 아이의 학기별 변화로서 계절을 느끼게 된다.
 긴 긴 겨울방학이 끝나서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정해지고,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엄마인 나 또한 분주해지기 시작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여름방학이고 가을학기가 시작되는가 하면 곧 겨울방학이다. 그렇게 숨가쁘게 봄을 느낄 사이도 없이 봄을 맞이하고 다시 보낸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백일장이 열린다는 수봉공원, 이곳에 올라오면서 봄 냄새를 맡았다. 새롭고 싱그러운 듯하지만 어둡고 긴 겨울이라는 터널을 빠져나온 계절의 한숨인 듯도 느껴졌다.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은 5월 9일이다. 여름이 빨라진 지금은 늦봄이라 해야하나? 하여튼 오늘처럼 화창하던 그 봄날 우린 결혼을 했다. 어렵게... 정말로 힘들게….
 대부분 회사 내의 커플들이 그렇듯이 우리 또한 오며가며 정들고 업무를 빙자한 만남으로 잠깐씩의 손도 스쳐가며 사랑을 키웠다. 전혀 내 이상형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외모와는 달리 섬세하고 자상한 그의 모습에 조금씩 난 기대가고 있었고 어는 순간부터는 그와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춘기 때 아빠, 엄마의 이혼과 새엄마와의 만남으로 혼란스런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늘 사랑에 목말라 있었고 아니, 사랑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정'이라는 것에 허기져 있었다. 그 때문에 대학시절에도 난 그림처럼 예쁘고 알콩달콩한 이성과의 만남보다는 남자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성친구들을 괴롭게 하곤 했다.
 난 애초에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혼자 정하고 있었던 거다.
 날 향해 이성이 다가올수록 `너도 마찬가지야. 남자는 다 똑같아.'라며 밀어내곤 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런 나를 끝까지 달래주었고 `이쯤이면 가버리겠지' 했을 때도 의외의 결과로 날 감동시키곤 했었다. 그리고 조금씩 믿음이란 희망이 생기면서 결혼까지도 약속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결혼의 조건이라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빠는 우리가 헤어지길 원하셨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당신은 당신 마음대로 사랑을 선택했고, 그래서 엄마와 우릴 엄청난 고통 속에 빠뜨렸으면서….
 급기야 난 그의 아이를 가졌다. 그 길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임신의 신체적 징후가 나타나면서 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울면서 매달렸다. 그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고… 제발 그 사람에게 보내달라고… 그때 처음으로 아빠의 눈물을 보았다.
 “현정아, 그 사람이 그렇게 좋니?”
 “네, 아빠…”
 그리곤 4월 중순 해가 뉘엿뉘엿 지는 봄날 오후, 아빠와 그 사람은 한 식당에 마주앉게 되었다.
 난 그 먼 발치에서 초조한 맘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아빠가 나오시는 게 보였고, 잠시 후 그 사람도 나왔다. 난 그 사람에게 달려갔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 사람은 활짝 웃어주었다.
 그리고는 “우리 결혼 언제가 좋겠어?”라며 손을 잡아주었다.
 난 아빠에 대한 죄송함인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기쁨 때문인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달 화창했던 5월의 봄날, 아주 평범한 예식장에서 임신 5개월의 배를 가릴 수 있는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을 했다.
 이제 얼마 있으면 결혼 기념일이 다가온다. 결혼 10주년… 힘들게 결혼한 만큼 열심히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난 힘들 때마다 결혼식 날을 생각하곤 한다. 모든 것이 우릴 위해서만 돋아나고 빛나는 듯 느껴졌던 봄 풍경들, 봄 냄새들...
 하루하루가 그렇게 새롭고 화창하진 않았지만 겨울을 이겨낸 나무며 꽃들처럼 나 또한 힘든 시간들을 잘 견뎌왔다. 내 남편과 내 아이가 곁에 있어 주었기 때문이다.
 난 언제까지나 그 날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한 날이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서 서로 등 긁어주는 나이가 되었을 때도 난 그 찬란했던 봄날과 봄의 향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남편과 나도 힘들었던 기억조차 그리워하겠지만…
 참 햇살이 좋은 오늘이다. 봄을 느끼며 잠깐이나마 내 인생의 가장 싱그럽고 찬란했던 봄의 한 순간을 추억할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했다.
다시 봄이 올 때마다 오늘 또한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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