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느티나무집 아저씨가 있다. 서너 살 아래인 그는 만날 때마다 자기 아내가 못마땅하다고 한다. 그리고 돼먹지 않은 한국의 가정 문화풍토에 신물이 난다고 했다.
“형님!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마누라가 살림이니 아이들 교육이니 뭐니 하며 평생 남편 월급봉투를 고스란히 받아 챙기더니 퇴직을 하고난 후부터는 애들 과자값도 안 되는 용돈을 매일 매일 타서 쓰라고하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남편 월급 빼앗아 챙기고 용돈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요. 용돈 한번 낫게 타 쓰려면 그 앞에서 아양을 떨어야 하니 이 나이에 그게 말이나 됩니까? 아내 몰래 로또 복권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아침저녁 꺼내어 염불을 외우는 제 심정을 형님은 아십니까?”
그 친구는 어디서 한잔 했는지 비틀거리며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쏟아 놓는다. 그의 애절한 호소를 들으며 그를 위로 한답시고 맞장구를 쳤다.
“암. 그렇고 말고 친구 말이 일리가 있고말고! 어서 들어가게. 내일 또 만나세. 난 집에 손님이 와 있어서 들어가겠네.” 그를 간신히 떼어놓고 집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씁쓸하기만 하다.
‘가장은 도대체 누굴까? 돈을 버는 기계에 불과한 것인가. 오늘날 가장은 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제구실아란 말인가!? “
이런 생각을 하면 끝없는 의문과 갈등의 파도가 마음의 심연에서 서서히 출렁이기 시작한다. 남성은 성공하고 싶은 욕구, 출세하고 싶은 욕구,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여성보다 강하다. 그래서 투우장의 소처럼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그나마 속도를 내자면 휘발유(돈)가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가족들을 눈여겨보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족들은 점점 가장으로부터 멀어져만 가고 가족들이 필요로 한 것은 가장이 벌어드리는 돈 뿐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끝내는 아내와 자식으로부터 희미한 그림자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 오늘날의 가장이 아닌가. 퇴직한 느티나무 집 아저씨는 돈 버느라고 평생 지친 몸을 푹 쉬고 쉽고 이제는 돈도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가 같이 있어만 주면 지옥인들 못 가겠느냐는 심정이지만 아내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집안 살림, 바람 잘 날 없는 자식들과의 싸움(?)과 건사, 까다로운 남편에게 구속당하고 산 세월이 억울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자식을 모두 떠나 보내고 제대 군인이 된 기분으로 자유부인을 꿈꾸며 “친구는 오케이. 남편은 사절”이라는 운신으로 가장을 외롭고 슬프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멀쩡한 아내가 한번 외출을 하면 남편의 끼니 걱정도 안하고 해가 져야 집에 들어오는 일이 허다 하니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그 말이 맞아요. 자식 다 키워 놓고 쉴 만 하니까 아내가 저금통장까지 움켜쥐고 다니니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닙니다.!” 느티나무 집 아저씨는 사뭇 못마땅하고 분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따금 찾아오는 자식들과 한 패가 되어 쑤군대다가도 그것이 궁금해서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시치미를 딱 떼는 아내가 한없이 밉다고 했다. 그러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는 말은 느티나무 집 아저씨가 잘못이고 그 아주머니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느티나무 집 아주머니와 가장 가까운 슈퍼 아주머니가 전하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와 며느리. 어머니와 주부라는 피나는 역할을 35년간 해오면서 한번도 남편으로부터 잘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어요. 월급봉투 가져오는 날이 싸우는 날이고 수시로 가져가는 용돈이 월급 보다 더 많아요. 남편이 퇴근하면 온 집안 식구가 하던 일을 멈추고 거실로 나와서 맞아 주어야하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친구의 술심부름을 하지 않으면 난리가 나요 ”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유교적 문화속에 오랫동안 자리 매김한 제왕적 가장의 위치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가장의 권위는 녹슨 양철판 계급장이 되어버렸고 가족 모두가 평등화되어가는 시대가 오고 있다. 가장은 이제 가부장적 권위를 버리고 가장 낮은 이등병(?)의 위치로 가야한다.
아내의 수고와 아픔을 눈여겨보고 다독이며 비싼 물건이 아닌 꽃 한 송이라도 자주 건네주며 사랑과 감사의 눈 맞춤을 해야 한다. 이는 결코 가장의 권위 상실이나 눈치 보기가 아니다. 숙성된 가장으로서의 임무다. 사랑이란 자기 몸을 낮추어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다.
인생 최고의 복은 인복이라고 한다. 남편 복, 아내 복, 자식 복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부메랑처럼 내가 나누고 베풀고 섬긴 만큼 내게 돌아오는 것이다. 조석으로 느티나무 집 아저씨를 보면서 어느 날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여보게 정형 ! 내가 요즈음 이 나이(65세)에 짜릿한 행복감에 젖어있다면 누가 믿겠는가? 정년 후 요리학원에 가서 공부를 한 덕분이라네, 월말이면 내 주가는 한없이 뛴다네! 우리 집 식솔들이 모두 나를 찾는다네. 내가 만든 별미로 딸, 며느리, 사위, 손자들 까지 온 가족이 모여 즐겁고 행복한 저녁시간을 밤늦게 까지 보낸다네. 아이들이 오면 그냥 오는가? 내 주머니에 찔러주는 용돈으로 손자에게 넉넉함을 보이니 꿩 먹고 알 먹기라네!”
“형님!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마누라가 살림이니 아이들 교육이니 뭐니 하며 평생 남편 월급봉투를 고스란히 받아 챙기더니 퇴직을 하고난 후부터는 애들 과자값도 안 되는 용돈을 매일 매일 타서 쓰라고하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남편 월급 빼앗아 챙기고 용돈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요. 용돈 한번 낫게 타 쓰려면 그 앞에서 아양을 떨어야 하니 이 나이에 그게 말이나 됩니까? 아내 몰래 로또 복권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아침저녁 꺼내어 염불을 외우는 제 심정을 형님은 아십니까?”
그 친구는 어디서 한잔 했는지 비틀거리며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쏟아 놓는다. 그의 애절한 호소를 들으며 그를 위로 한답시고 맞장구를 쳤다.
“암. 그렇고 말고 친구 말이 일리가 있고말고! 어서 들어가게. 내일 또 만나세. 난 집에 손님이 와 있어서 들어가겠네.” 그를 간신히 떼어놓고 집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씁쓸하기만 하다.
‘가장은 도대체 누굴까? 돈을 버는 기계에 불과한 것인가. 오늘날 가장은 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제구실아란 말인가!? “
이런 생각을 하면 끝없는 의문과 갈등의 파도가 마음의 심연에서 서서히 출렁이기 시작한다. 남성은 성공하고 싶은 욕구, 출세하고 싶은 욕구,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여성보다 강하다. 그래서 투우장의 소처럼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그나마 속도를 내자면 휘발유(돈)가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가족들을 눈여겨보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족들은 점점 가장으로부터 멀어져만 가고 가족들이 필요로 한 것은 가장이 벌어드리는 돈 뿐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끝내는 아내와 자식으로부터 희미한 그림자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 오늘날의 가장이 아닌가. 퇴직한 느티나무 집 아저씨는 돈 버느라고 평생 지친 몸을 푹 쉬고 쉽고 이제는 돈도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가 같이 있어만 주면 지옥인들 못 가겠느냐는 심정이지만 아내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집안 살림, 바람 잘 날 없는 자식들과의 싸움(?)과 건사, 까다로운 남편에게 구속당하고 산 세월이 억울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자식을 모두 떠나 보내고 제대 군인이 된 기분으로 자유부인을 꿈꾸며 “친구는 오케이. 남편은 사절”이라는 운신으로 가장을 외롭고 슬프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멀쩡한 아내가 한번 외출을 하면 남편의 끼니 걱정도 안하고 해가 져야 집에 들어오는 일이 허다 하니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그 말이 맞아요. 자식 다 키워 놓고 쉴 만 하니까 아내가 저금통장까지 움켜쥐고 다니니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닙니다.!” 느티나무 집 아저씨는 사뭇 못마땅하고 분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따금 찾아오는 자식들과 한 패가 되어 쑤군대다가도 그것이 궁금해서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시치미를 딱 떼는 아내가 한없이 밉다고 했다. 그러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는 말은 느티나무 집 아저씨가 잘못이고 그 아주머니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느티나무 집 아주머니와 가장 가까운 슈퍼 아주머니가 전하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와 며느리. 어머니와 주부라는 피나는 역할을 35년간 해오면서 한번도 남편으로부터 잘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어요. 월급봉투 가져오는 날이 싸우는 날이고 수시로 가져가는 용돈이 월급 보다 더 많아요. 남편이 퇴근하면 온 집안 식구가 하던 일을 멈추고 거실로 나와서 맞아 주어야하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친구의 술심부름을 하지 않으면 난리가 나요 ”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유교적 문화속에 오랫동안 자리 매김한 제왕적 가장의 위치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가장의 권위는 녹슨 양철판 계급장이 되어버렸고 가족 모두가 평등화되어가는 시대가 오고 있다. 가장은 이제 가부장적 권위를 버리고 가장 낮은 이등병(?)의 위치로 가야한다.
아내의 수고와 아픔을 눈여겨보고 다독이며 비싼 물건이 아닌 꽃 한 송이라도 자주 건네주며 사랑과 감사의 눈 맞춤을 해야 한다. 이는 결코 가장의 권위 상실이나 눈치 보기가 아니다. 숙성된 가장으로서의 임무다. 사랑이란 자기 몸을 낮추어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다.
인생 최고의 복은 인복이라고 한다. 남편 복, 아내 복, 자식 복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부메랑처럼 내가 나누고 베풀고 섬긴 만큼 내게 돌아오는 것이다. 조석으로 느티나무 집 아저씨를 보면서 어느 날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여보게 정형 ! 내가 요즈음 이 나이(65세)에 짜릿한 행복감에 젖어있다면 누가 믿겠는가? 정년 후 요리학원에 가서 공부를 한 덕분이라네, 월말이면 내 주가는 한없이 뛴다네! 우리 집 식솔들이 모두 나를 찾는다네. 내가 만든 별미로 딸, 며느리, 사위, 손자들 까지 온 가족이 모여 즐겁고 행복한 저녁시간을 밤늦게 까지 보낸다네. 아이들이 오면 그냥 오는가? 내 주머니에 찔러주는 용돈으로 손자에게 넉넉함을 보이니 꿩 먹고 알 먹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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