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건강하면 사회가 건강하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더불어 정체성의 위기나 혼란, 갈등, 불안, 초조, 절망 등 인간의 마음을 한순간 지옥으로 몰고 가기도 하는 감정들이 이 빠른 변화의 뒤편에 검은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다.
오늘도 각종 매스컴에서는 우울, 자살, 스트레스, 다툼들로 인한 온갖 사건사고들이 사회면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으로 사회 곳곳에서 느리게를 표방하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무슨무슨 둘레길 걷기라든지 웰빙이 들어간 각종 먹거리와 여가시간 활용 등은 정신적 공황에서 오는 적절한 치유법으로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이렇듯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심리적, 정신적, 사회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신적 질병을 가져오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의 뇌신경을 건드려 일상적 생활에 불편을 주거나 지장을 초래한 증상들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올바른 대처법을 홍상의 전문의를 통해 들어보았다.
어른이나 청소년 어린이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겪는 정신과 질환은 무엇인가요?
중독 질환 중 알코올 및 니코틴 사용 장애, 단순한 회피로 증상이 소실되는 공포증이 포함된 불안장애를 제외한다면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진료 현장에서 가장 흔한 질환은 ‘기분장애’이고 그 중 ‘우울증’이 가장 많습니다. 며칠간 다소의 우울함을 느끼는 경우에는 휴식이나 가족 및 친구의 지지 등을 통하여 극복이 가능하지만, 평소엔 즐겁던 일로도 전혀 즐거움을 못 느낀 채 우울 감정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병’으로 봅니다. 식욕 부진이나 항진, 그와 연관된 급격한 체중 변화나 수면 장애가 동반되기도 합니다.
어른과 달리 청소년들에게 나타나는 우울증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나요? 어린이에게도 우울증이 온다고 들었는데요.
증상이 달라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의 경우 복통 등의 신체 증상만을 호소하거나 청소년의 경우 일탈 행동만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인이나 가족 모두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지 못해 치료가 늦어지기도 합니다. 우선은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에 대응해야겠지만, 평소와 다른 모습이나 행동을 보이는 경우 심리적인 문제가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지켜보실 것을 권합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의 절반 정도가 우울증이나 성적에 대한 압박 등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할까요?
사춘기 자녀의 경우 한편으론 부모가 권하는 것과 반대로 다르게 하고 싶은 독립심이 강한 반면, 하교시 반기는 가족이 없으면 공연히 허전해 하는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순간적으로 보면 모순이고, 종잡을 수 없지만 도약을 위한 웅크림이 발달의 특성임을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치료적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관심을 갖되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요. 물론 관심이나 제재가 필요할 때에는 적절한 개입이 필요합니다.
사춘기 자녀가 자신의 외모나 주변 환경, 불안한 미래 등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보일 때 바람직한 가족의 자세나 치료법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적절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과도한 관심과 걱정으로 인하여 오히려 불안을 키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취학 전의 어린이를 살펴보면 잘 놀다가 특별한 용건이 없는데도 슬쩍 보호자를 쳐다보곤 합니다. 바로 ‘안전기지’(secure base)라고 불리는 애착이 형성된 대상을 확인하는 것인데요. 이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잘 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있어서도 이 원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든든한 보호자의 존재가 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확인하게 되면 스스로 헤쳐 나가려는 노력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3월은 입학철입니다. 특히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는 초등학생을 가진 부모는 많은 걱정을 합니다. 틱(Tic) 장애나 분리불안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가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등교 거부증과 더불어 학년 초에 특히 빈발하는 질환입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수준이면 반드시 한 번은 진찰받는 것이 필요합니다만, 복합 틱이나 음성 틱이 아닌 증상 발현 3개월 미만의 일과성 틱이나 ADHD로 진단내리기엔 그 정도가 가벼운 경우 약물 치료를 하지 않고 행동수정요법 등의 인지치료만으로도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의 불안이 옮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치료적 무관심’의 태도를 갖고 적응을 도우십시오.
초보적 질문입니다만 ‘정신’과 ‘마음’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절대로 ‘초보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영어로 정신과 마음은 ‘psyche’, ‘mind’ 로 표기하며 때로는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의미로 개인이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 혹은 그런 작용으로 정의할 수 있는 ‘정신’이란 개념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연구대상으로서의 정신은 행동(behavior)라는 말로 대신하여 쓰도록 권장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관적인 정신적 경험과 객관적 행동이라는 두 가지의 통합된 개념이 인격(personality)이라 할 수 있는데 정신의학의 대상은 바로 이 인격이라 하겠습니다.
일반 병원과는 다르게 쉽게 진료 받으러 오기에는 뭔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데요.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외롭거나 사는 게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정신과적 상담은 연령이나 증상에 따라 그 시기가 있을까요?
대부분의 발달이론이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만을 다룬 반면 에릭슨(1902~1994 . 독일 출생의 정신분석학자, 미국에서 활동)은 노년기까지로 그 시기를 확장하여 삶의 단계별 과제와 갈등양상을 제안했습니다. 나이듦에 따른 각 시기의 문제로 누구나 고민하고 힘들게 마련입니다. 전 단계를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못했더라도 다음 단계를 경험하기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더욱 힘들어지겠지요. 점차 인식이 개선되어 가고 있습니다만, 사회적 편견으로 인하여 내원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무엇이 힘들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거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무런 원인이 없더라도, 막연히 스스로 본인이 답답하다고 느낄 때 훈련받은 전문가의 조언을 통하여 문제가 파악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치료가 되기도 하나요?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것은 치료의 시작이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기본입니다. 많은 내담자들이 평소에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매일 함께 사는 가족과 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너무 가까운 사이라서 부담을 느끼거나 때로는 그런 사이의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이기에 이야기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타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때 어느 정도는 치료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경청만으로는 증상 개선에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그런 경우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약물치료가 상담 이상으로 시급하고 중요한 경우도 있지요. 상담만으로 좋아지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약물 치료와 병행했을 때 효과적일 때가 더 많습니다.
최근 내담자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거나 특별히 치료가 더 요구되는데도 안타깝게 상담을 그만 둔 사례가 있을까요?
좋아진 사례를 통하여 큰 보람을 느끼는 만큼 기억에 남지만 아무래도 치료가 갑자기 중단되었거나 증상이 악화된 경우가 기억에 더 많이 남습니다. 입원이 필요한데 본인이 원하지 않고, 보호자마저 동의하지 않아 치료가 중단되는 경우 현실적으로 치료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기에 안타까움이 큽니다. 또한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는데 때로는 돈이 약만큼 필요한 분들을 볼 때 의사로서의 한계를 느끼면서 좀 더 분배가 잘 실현된 복지국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곤 합니다.
우울이나 불안, 강박, 화병은 현대인의 대표적 정신적 질병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결국 감정의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혼자서도 감정조절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합리와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여유나 휴식을 사치나 불필요한 낭비로 여기거나 심지어 그마저도 구입하고 소비하는 것이라는 사고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흥분했을 때, 잠시 쉬었다가 말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고 ‘꿈’을 꾸준히 기록하여 자신의 무의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편안해진 사례도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의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의식’이 의식과 함께 존재하기에 문화가 풍요로워졌습니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많은 신화와 전설이 그 증거입니다. 인생의 1/3을 차지하는 잠을 낭비라 여기지 않듯 때로는 더디고 느린,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홍상의 전문의는 긴 시간 질문에도 조목조목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그는 도화동에서 정신과 간판을 걸고 남구주민들을 위한 정신적 가이드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최근 학업에 스트레스를 가진 청소년들의 방문이 많다며 걱정하고 있다. 바쁜 시간을 내준 홍상의 전문의에게 감사를 보낸다.
|최향숙 기자 essaychs@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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