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 뒤 집에 도착해 현관을 열려는데 스티커 한 장이 붙어있다. `경고장`이었다. 지난 3개월간 전기요금을 내지 않아 월요일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전기를 끊어버리겠단다. 30도쯤 열 받았다.
미납처리 안내를 받은 적도 없는데 `느닷없이`, `비밀리에`, 게다가 남들 다보는 현관 앞에 `망신 주듯이` 붙인 것에 10도쯤 열 받았다. 진짜 미납했다면 미안하기라도 하지. 매달 꼬박꼬박 정확한 날짜에 통장에서 쏙쏙 빼가면서 웬 뒤통수? 또 10도쯤 상승. 영수증을 보관한 서랍에서 며칠 전 받은 요금청구영수증을 확인했다. 역시 `미납요금 없음`이었다. 다시 10도쯤 열 받았다.
이달 납입내역서를 받을 땐 봉투 하나를 더 받았는데 마스크와 마스크걸이까지 있었다. 딴엔 자동납부하니까 사은품 형식으로 주는 걸로 알고 한전에 고마움까지 느꼈었는데, 단 며칠 만에 떡 줬다가 뒤통수를 치다니. 반격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공기업의 허술한 업무 태만과 시스템 문제를 청와대 청원으로 올려볼까. 본격 겨울이 시작되는데 돈 몇 푼 안냈다고 (사기업도 아닌) 거대 공기업이 경고장 붙인 뒤 단 3일 만에 (그것도 주말 이틀 빼면 단 하루 주고) 돈 안내면 전기를 끊겠다는 건 비인간적 처사이니 SNS에 올려 사회적 공분을 일으켜볼까.
생각할수록 분했다. 흥분을 가라앉힐 요량으로 맥주를 마시러 냉장고로 가려다 넘어질 뻔 했다. 전깃줄에 걸린 것이다. `아, 정말 왕짜증 나네` 하며 발아래를 보니 전깃줄인지 어부가 버린 그물인지 수많은 줄들이 뒤엉켜 있었다. 줄들은 5구짜리 콘센트와 여기서 새끼를 친 2구와 3구짜리에도 뒤엉켜 맞물려 있었다. 컴퓨터, 청소기, 충전기, 스탠드조명, 가습기, 전기난로, 전기기타, 앰프… 전기를 먹고 사는 동거 사물들로 방이 꽉 차 있음을 새삼 알았다.
항아리 대신 김치냉장고, 빨래판 대신 세탁기, 빗자루 대신 청소기를 쓰는 것은 옛말이 됐고, 햇볕 대신 건조기, 가스 대신 인덕션이 대세다. 생활의 대부분을 전기에 의존하는 시대다.
하지만 전기요금이 버거운, 끊기면 당장 생계와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이 아직 우리 주변에 많다. 전기담요 한 장과 전기난로 하나로 동장군과 맞서야 할 쪽방의 홀몸어르신도 있고, 낡은 전자레인지로 한겨울 저녁 밥상을 차리는 청소년 가장도 있을 것이다.
겨울은 사람 가리며 오지 않지만 추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혹독하게 몰아친다. 생활의 많은 부분을 전기에 의존하는 만큼 겨울철만이라도 한전의 좀 더 세심한 배려와 꼼꼼한 시스템이 작동하길 바란다. 올해 한전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8203억여 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