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한 줄, 중간에 낀 적절한 단어를 찾는데 몇 시간을 소비했다. 그러다 정작 찾아낸 단어를 삽입하고 문장을 다듬자니 뭔가 어색하다. 분석하고 의미 파악하고 문장 속에 담긴 메시지를 살펴보자니 그 단어도 역시 아니다.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이랬다.
책을 쓰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함부로 단정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느낌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판단하지 않기로. 하물며 누군가의 피와 땀과 긴 밤의 불면과 뒷머리 터지는 욱죄임을 넘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내놓은 책 한 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매년 책장에서 책을 쳐낸다. 버릴 책과 소장할 책의 구분은 `꼭 필요한 것`과 `그래도 버리긴 아쉬운 것`과 `니가 왜 거기서 나와`순으로 분류한다. 먼저 제목과 저자, 유형을 보고 중요도를 가늠하고 순전히 내 지적 수준과 성향대로 베스트셀러나 밀리언셀러가 그래도 우선순위다. 다음으로 선택받는 책은 최근 핫한 신간이다. `이건 꼭 읽어야 해` 라는 것은 대부분 이 분류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제목으로도 확 땡기지 않고 주제도 관심 없는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류의 책은 드르륵 한번 훑고 라면박스로 직행. 기껏 구분해놓고 보면 역시나 편식이다.
이렇게 너절하게 나열하는 이유는 책을 내면서 겪었던 수없는 갈등과 내적 싸움과 의심과 허기가 내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내용의 책일지라도 저자가 부닥쳐야 했을 이런 노고를 생각한다면 어떤 책도 `그저 그런 책`은 있을 수 없다. 누군가 쓴 책을 읽으며 함부로 오만가지 자기식대로 재단을 그래서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소 허술한 구성일지라도 그 나름의 충분한 이유를 책들은 저마다 갖고 태어난다.
분류하고 쳐내면서도 항상 뭔가 미안하고 찜찜했던 기분은 `니가 왜 거기서 나와`에 속하는 책들이다. 소위 내게 버림받은 녀석들이다. 누군가의 처절한 시간이 담겨 있을 수도 있고, 단어 한 개를 찾기 위해 몇 날 며칠 쥐어짜고 뒹굴었을, 어쩌면 그의 영혼을 푸석한 포푸리로 만든 책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쉽게 버리고 쉽게 잊혀버린, 내게 내쳐짐을 당했던 수많은 책들은 그들을 만들어낸 저자도 함께 내친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권의 책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고통의 시간들을 알기에 생각 없이 내쳤던 책들에게 숙연함마저 갖는다. 이런 내 의식 속에는 책을 `효용가치`로만 산출하고 `필요한 책`이라는 방점에 비용 대비 효용을 따지는 산술적 계산이 먼저였을 것이다. 한 끼 밥값 정도면 누군가의 몇 십 년 세월, 몇 리터의 땀을 통째로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효용가치로 따진다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슬프게도 그 속에 저자에 대한 존경과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백과사전식 정보가 난무한다. 정체도 모르는 오만가지 잡학들이 터치 한 번으로 화면을 채운다. 식상한 말 같지만, 거기에는 인간(휴머니티)에 대한 배려는 없다. 다행인 것은 책 읽는 세상이 종말이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e-book이든 오디오북이든 또 나처럼 따뜻한 종이책을 좋아하는 아날로그 신봉자든 그저 누군가(작가)의 감성을 함께 공감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가.
50줄에 들어서 드디어 사람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책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겸손해질 것 같다.
- 이전글 지역경제 이대로 보고 있을 수 없다
- 다음글 1954년, 미추홀구의 병원들

